[KJtimes TV=김상영 기자]기성세대라면 미국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의 단편 ‘큰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책 ‘큰바위 얼굴’은 미국 남북전쟁(1861∼1865) 직후라는 역사적인 소재를 통해 여러 가지 인간상을 보여주면서 이상적인 인간상을 추구한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호손의 것을 피천득이 번역한 단편소설 ‘큰바위 얼굴’에 실려 있다. 장차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말을 어머니에게 전해들은 주인공이 날마다 큰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꿈과 희망을 키워 나간다. 그러다 나중에 진짜 큰 바위 얼굴이 된다는 내용이다. 이 콘텐츠는 세계 청소년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한때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을 만큼 ‘큰바위 얼굴’은 유명세를 탔었다.
그런데 전남 영암의 월출산에 한국판 ‘큰바위 얼굴’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최근 예선영 작가가 영암 ‘큰바위 얼굴’을 소재로 ‘큰바위 얼굴이 낳은 영웅! 진짜 매운 놈이 왔다’라는 소설 단행본(도서출판 한얼)을 펴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예선영 작가에게 영암은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다.
그는 “월출산이 있는 영암에 산지 어느 덧 10여년이 됐다. 나는 월출산을 가끔 오른다. 달이 오르는 산인 월출산에서 꽃도 보고 새도 보고 꿈도 본다. 그 중에서도 구정봉 큰 바위 얼굴에 오르는 것을 즐겨한다”고 말했다.
영암 ‘큰바위 얼굴’은 월출산에서 가장 높은 천황봉(809m) 아래에 있는 구정봉의 기암절벽이 그 주인공이다. 큰 바위 얼굴로 밝혀지기 전까지는 ‘장군 바위’라고 불렀다고 한다. 얼굴의 길이만도 무려 100여m 이상이다.
예선영 작가는 “나는 10여 년 전 아들 놈과 월출산을 오르면서 거대한 얼굴을 찾았다.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처럼 큰 바위 얼굴을 어느 날 뜻하지 않게, 마치 뜻한 듯이 큰 얼굴을 찾았다”고 당시를 소회했다.
영암 ‘큰바위 얼굴’을 소재로 소설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월출산에 올라가보면 전체가 마치 역사박물관이다. 다양한 캐릭터가 가득한 문화 갤러리 같다”며 “이 산은 정말 ‘유니크’했다. 재밌는 바위들이 죄다 모여 있다. 이 바위들이 하나하나 살아서 움직여 다니기에 판타지를 넣었다. 월출산에 있는 모든 바위에 생기를 불어 넣어 소설에 집어넣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다양한 영웅들의 콘텐츠가 쏟아져 나온다. 큰 바위 얼굴이 있는 대조선 땅에 태어난 나도 바위냄새 물씬 나는 이야기를 써 보았다”면서 “아주 매운 놈. 김치, 고추장처럼 매콤한 놈. 얼큰하고 시원한 정신이 박힌 캐릭터를 만들어 보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큰 바위 얼굴이 있는 곳, 대조선 땅에서 세계를 호령할 인물이 나온다니, 문헌의 예언과 전설의 수준이 매머드 레전드 급”이라며 “나는 대한민국 큰 바위 얼굴을 아시아를 비롯해서 세계와 공유하고 싶어서 (소설을) 썼다. 나는 민족주주의자이긴 하지만 세계주의자이다. 큰 바위 얼굴은 인류를 위해 바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소설 출간 배경을 밝혔다.
예선영 작가는 “바위는 불이 나도 뜨거워질 뿐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의 정보와 인문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생물이라고 나는 본다”며 “삶의 진실은 작은 조약돌 하나에도 다 들어갈 수 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인도의 타고르 시인이 고난 받는 대한민국이 장차 ‘동방의 등불’이 된다 했다. 아시아의 중심국가로 우뚝 설 것을 노래했다. 그 예언의 도래는 ‘큰 바위 얼굴’ 옆에 가면 선명해질 것이다”고 영암 ‘큰바위 얼굴’ 예찬론을 폈다.
이어 “이 큰 바위 얼굴을 대한민국 랜드마크로 최고 브랜드로 키워 세계 성지로 만들어 가야 한다”면서 영암 ‘큰바위 얼굴’의 유네스코 등재를 제안했다.
큰 바위 얼굴을 최초로 촬영한 사진작가 박철씨는 “머리와 이마, 눈, 코, 입에 볼 턱수염까지 영락없는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하고 있다”며 “태양 빛을 받아 형상을 드러내는 큰 바위 얼굴은 천기(天氣)와 지기(地氣)가 응어리져 나타난 웅대한 창조에너지”라고 말했다.
한편 영암은 백제 때 월내군(月奈郡)이라고 불렀다. 영암(靈岩)은 한자로 풀어보면 신령스러운 바위를 뜻한다. 1897년에 만들어진 ‘호남읍지’에는 군(郡)의 이름을 신령 영(靈)자와 바위 암(巖)자의 영암(靈巖)이라 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월출산 천황봉에서 동북쪽으로 약 100m 아래에는 통천문(通天門)이 있다. 한 사람이 겨울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바위굴이다. 월출산에서 하늘로 통한다는 데서 유래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은 ‘택지리’에서 “월출산은 화승조천(火昇朝天)의 지세”라고 했다. 즉 아침 하늘에 불꽃처럼 기를 내뿜는 기상이라는 것이다. 실제 월출산은 화강암으로 된 바위산이다. 돌의 80%가 맥반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맥반석은 원적외선을 방출해 사람을 이롭게 하는 약석(藥石)으로도 불린다.
영암군민들은 큰 바위와 얽힌 예언으로 문화, 종교, 정치 세 분야에서 뛰어난 인물이 나타난다고 믿었다. 문화 분야에는 월출산 주지봉 아랫마을인 군서면 구림리에서 태어난 왕인(王仁) 박사가 있다. 백제 근초고왕 때의 학자로 일본에 초청을 받고 건너가 논어와 천자문을 가르쳤다.
왕인박사 탄생지에서 4월에 열리는 ‘영암왕인문화축제’는 수많은 일본 관광객들이 성지순례처럼 찾고 있다. 종교 분야에는 한국풍수지리의 대가인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있다. 역시 구림리에서 왕인 박사 서거 500년여 만에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