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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못다한 이야기들⑩]의료관광協 서은희…마음 부자 된 두 번의 자가 격리

서은희 의료관광코디네이터협회장

 

[KJtimes]4170시를 기해서 드디어 기나긴 자가 격리가 끝났다. 317일부터 시작된 한 달에 두 번의 격리생활이 지겹기는 했지만, 내 삶에 더없이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317일부터 왜 한 달 간이나 되냐구요?”


바로 그날이 막내 아이의 학교 입학을 위해서 미국행 대한항공 011 로스앤젤레스 편에 몸을 실었던 날이다. 인천공항은 내가 한때 승무원으로 일했던 적도 있고 해외를 많이 다닌 편인데 지금까지 경험한 공항 중 가장 한산 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공항 직원의 숫자가 탑승객의 숫자보다 많아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무언가 닥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갑자기 나에게 엄습해왔다. 이제 정말 집을 떠나 한 번도 경험 해보지 못한 고생길을 가야 하는구나 싶은 마음이 나를 무겁게 눌러 왔다.


하지만 아이와 나는 이왕 떠나는 길을 즐기자는 각오로 공항놀이를 시작했다. 2월 초부터 한국에서 집단감염이 시작되면서 한국인의 입국을 불허하거나 항공노선 자체를 끊어버리는 경우가 나날이 늘어 우리의 관심은 오직 미국이 언제 우리 하늘 길을 끊을까 조바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막내 종수는 고1까지 학교를 다닌 후 제 갈 길을 가겠다고 자퇴를 하고 자신이 정한 꿈을 찾아 3년 동안 작업실에서 혼자 랩을 공부 하며 내린 결정으로 미국의 실용음악학교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딱히 유명한 학교는 아니지만 자신의 꿈을 찾아서 본인이 모든 결정을 하고 합격통지를 받아놓고 꼭 보내달라며 협박이 섞인 통보를 해왔다. 처음에는 시간을 가지고 생각 좀 해보자고 말했더니 이번 학기에 맞춰 보내주지 않으면 더 이상 세상과 소통하지 않겠다는 엄포를 놓는 바람에 반강제적으로 우리 부부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했나 보다. 종수는 4월부터 미국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실용음악을 공부한다는 꿈에 부풀어 하루하루가 너무 즐거웠다. 미국 비자도 순조롭게 장기간으로 받아서 한국의 작업실을 정리하며 비행기 탈 날만 고대하고 있었는데 예기치 않은 코로나19가 자신의 인생을 막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점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애초 혼자 보내려던 계획을 급히 수정하여 내가 동행하기로 했다. 학교에 문의하니 정상적으로 개학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오면 14일 간은 미국에서 체류 후 출석해주기를 당부해 와서 우린 일찌감치 미국 길에 올랐다.


발열체크를 거치고 탑승권을 받아 탑승구에 도착하니 동남아 환승객이 거의 대부분이다. 나는 또 긴장하기 시작했다. 동남아는 진단검사를 할 수가 없어서 확진자를 파악조차 어렵다는 기사를 본 터라 기내 감염이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두 겹으로 쓰고 탑승했다. 기내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물을 적게 마시고 식사도 거의 안 먹고 버텨보기로 했다. 10시간의 비행 끝에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했다. 이때만 해도 한국은 신천지 사태로 인해 세계인들로부터 중국 다음으로 오염국가로 주목을 받던 때라 미국인이건 외국인이건 무조건 한국에서 입국한 사람들은 특별라인으로 줄을 서게 했다.


오기 전날 미국발 뉴스에서 미국 대통령이 유럽에 있는 자국민들에게 귀국을 종용해서 입국에만 다섯 시간 이상 줄을 섰다는 뉴스를 봤기 때문에 우리는 기다리는 시간 동안 먹을 간식도 준비했었다. 하지만 한 시간도 기다리지 않아 심사대에 도착했는데 입국심사관은 나에게 이렇게 소리 질렀다.


어디서 왔지요?”

한국에서 왔어요.”

둘이서 뭘 하러 온 거지요?


그의 부릅뜬 두 눈에서는 코로나도 무서운데 너희 나라에 가만히 있지 왜 여기 온 거야?’ 하는 표정이었다. 어차피 단단히 마음먹고 여기까지 왔는지라 당당하게 내 아이 학교 입학 때문에 왔다고 하니 한 장의 종이를 건네주었다.


‘STAY HOME’ 자가 격리 14일간 하라는 안내문이다. ‘그래, 나 격리할 각오하고 왔으니 시키는 대로 해줄 게.’ 하며 당당하게 공항을 빠져나왔다. 우리의 숙박 예정지는 한인 타운 중심가에 있는 한인호텔이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여기도 심상치 않았다. 호텔이 뭔가 살벌한 느낌이 들고 안에 들어가니 오늘부터 로스앤젤레스 모든 식당들은 테이크아웃만 되고 식당 내에서 식사를 할 수 없게 행정명령이 나왔단다.


그래서 호텔의 조식당도 운영하지 않으니 제공할 수가 없다고 미리 엄포를 했다. 그러니 투숙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호텔 옆 건물이 맥도날드이니 거기서 아침을 해결하면 되겠다 싶어서 그냥 투숙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뿔싸, 맥도날드도 드라이브스루(drive through) 만 주문이 가능하고 모든 대면 서비스는 중지했다. ‘내가 비행기를 타고 오는 열 시간 동안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야? 왜 하필이면 내가 오는 날에 맞춰서 이런 시련이 오는 거야?’라고 나의 불운을 탓했다.


하지만 불운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하루하루 급속하게 증가 하는 미국 확진자 숫자로 주정부들이 긴장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모든 호텔 영업도 중단하라고 명령을 했다. 호텔 총지배인은 나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왔다. 나는 16박을 할 예정이었으니 그도 퍽이나 난감했을 것이다.


우리는 어차피 호텔 안에서만 지내야 하니 그냥 있겠다고 하고 앞으로 먹을거리가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아들과 같이 근처 한인마트에 가서 장보기를 해왔다. 며칠은 버틸 수 있을 거 같아 든든했던 마음도 잠시, 다음날 아침에 호텔 오너로부터 즉시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호텔이 방역작업을 해야 하고 직원들도 출근을 하지 않으니 문을 완전히 닫을 것이란다. 그도 그럴 것이 호텔에 투숙객은 우리 둘뿐이었다. 또 다시 난감해졌다. 하지만 길에서 노숙을 할 수는 없으니 한인 민박집 몇 군데 전화를 돌려 겨우 한 집에서 받아주겠다고 해서 우리는 아무 조건도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짐을 챙겨나갔다.


하지만 불운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행운이 찾아온 것일까. 민박집 주인 내외분은 70대로 인심이 너무나 후하고 따뜻한 분들이었다. 보통 민박집 투숙객들은 아침만 먹고 관광을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는데 우린 격리 중이라 나갈 수도 없고 방에만 박혀있으니 안쓰러웠는지 사장님이 제발 산책 좀 나가라고 하신다.


미국은 자가격리자를 심하게 통제하지는 않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로 6피트의 거리를 두지 않고 길을 걷다가 경찰에 적발되면 200불의 벌금이 부과된다. 200불보다 혹시라도 한국에서 들어왔으니 격리해야 하는데 왜 밖에 돌아다녀요.” 할까봐 그게 더 두려워 집 주위만 빙빙 돌다 들어와 버렸다.


하늘은 너무도 맑고 푸르고 높아서 더욱 뛰쳐나가고 싶게 만드니 차라리 저 무심한 하늘을 안 쳐다보는 것이 나의 정신건강에 좋으리라. 민박집 사모님과 커피 한 잔 놓고 한국 이야기, 미국 이야기, 시댁 이야기 등 하루 종일 수다 삼매경에 빠져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두주가 훌쩍 지나갔다. 여자들의 수다가 이럴 때 최고의 병기가 되고 유용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아이를 기숙사에 무사히 넣어주고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올 날이 다가왔다. 그런데 미국에 있던 유학생들이 학교 기숙사가 폐쇄되어서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가는 인원이 많아서 비행기가 만석이란다.


미국에 와서 관광은 꿈도 못 꾸고 방에만 그야말로 집콕으로만 있다가 다시 공항으로 가는 내가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들 문제는 해결하고 특별한 문제없이 다시 돌아갈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었다. 아이와 아쉬운 이별을 하고 나는 또다시 공항과 기내 감염 대비를 단단히 마음먹고 탑승수속을 했다.



여기도 역시나 공항이 한산하다.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기로 악명이 높은 로스앤젤레스 공항이 나의 전용공항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4시간 일찍 도착한 나는 공항 면세구역 안 한쪽에 소독제를 뿌리고 그 자리에 앉아서 4시간 동안 마네킹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뭔가 마음이 불안해서 다른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는데 탑승구로 가니 완전 진풍경이 펼쳐졌다.


대한항공과 나란히 홍콩행 캐서이퍼시픽 항공사 탑승객들이 줄을 서서 탑승하는데 이건 중환자실로 들어가는 의료진들의 복장과 같았다. 방호복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리고 마스크에 고글까지 완전무장을 한 중국인들의 모습이 의아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갖춰 입은 복장이 어색하다 보니 혼자서 피식 웃으며 항공기에 탑승했다.


이코노미석 맨 앞줄 세 자리 중 통로 쪽에 앉았는데 옆자리 남자 분은 마스크만 했고 창가 쪽 여성은 고글에 신발 커버까지 무장을 하고 나타나 나를 바짝 긴장시켰다. 마스크에 장갑을 이중으로 끼고 대비를 한 나보다 더 철저하게 하고 나타난 것이 왠지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난 화장실조차도 절대 가지 않겠다는 각오로 잠을 청했다.


무려 13시간 동안 한국인 특유의 오기로 아무 것도 안 먹고 안 마시고 결국 나는 자리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고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어날 때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다리가 저려왔다. 13시간 동안 엉덩이 한 번 안 들고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꼿꼿하게 앉아 왔으니 혈액순환에 장애가 온 것이다.


하지만 나 자신이 대견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공항 검역에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무증상자로 입국절차를 무사히 마쳤다. 대중교통 이용이 꺼림칙해서 미리 대기시켜 둔 차량을 타고 집으로 도착했지만 또 다시 14일간 한국에서의 격리 생활을 시작해야만 했다.


미국에서는 다소 느슨한 격리이지만 외국 땅이고 현지에서 급격한 확진자 증가로 인해 마음이 불안한 격리였다고나 할까. 반면 한국에서의 격리는 아주 엄격하고 만일 준수하지 않을 경우 형사고발과 함께 사법조치까지 내려진다고 겁을 잔뜩 주는 자가 격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내 나라 나의 집에서 하는 격리는 그냥 마음 편하게 느껴졌고 주변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비록 밖에 한 번 나가보지 못하는 가택연금 생활이었지만 평소에 좀처럼 받아 보기 어려웠던 남편과 아이들의 집안 서비스는 물론 크고 작은 배려가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주변 친구들이 고생한다면서 배고프지 말라고 치킨이랑 분식을 현관 앞까지 갖다놓고 밖에서 벨만 누르고 말로 인사하고 돌아갔다. 작은 마음 씀씀이나 배려가 이렇게 고맙고 기쁘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한 것 같다. 감사한 마음으로 소중히 지켜나가야 할 내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앞으로 더 잘하리라 생각하게 됐다.


한국의 의료수준과 서비스를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하는 국제의료 관광 코디네이터로써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의료와 방역의 우수함에 더욱 확신이 생겼다. 미국과 한국을 비교해가며 체험한 나에게는 두 번의 자가 격리가 끝나니 오히려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마음 부자가 된 느낌이다.


어릴 적 연못가를 지나다 우연히 던진 돌이 끝없는 물결을 일으키는 광경을 보았던 생각이 난다. 코로나 때문에 겪은 두 번의 힘들었던 자가 격리가 코로나 덕분에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는 눈을 갖게 했다.


감사의 시간을 선물해준 자가 격리에 감사를 전한다. 이 감사의 파문이 내 삶에 늘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기를 약속하며 그리고 이렇게 외쳐본다.


코로나야, 저리 물렀거라!”

 

[약력 : 서은희]


- 공인국제의료관광코디네이터협회 회장


-아우마당포럼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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