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석 차남 사망으로 본 ‘재벌家 비운의 황태자들’

익사·추락사·교통사고사·자살·불의의 사고 등으로 '꽃 못다피워'

[kjtimes=김봄내 기자]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차남(36)이 죽음을 계기로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한 재벌가의 황태자들이 또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삼성가문을 비롯해 현대가문, LG가문, 롯데가문 등 재벌2세들이 그들이다.

 

실제 이들 재벌가에는 비운의 주인공들이 존재하고 있다. 물론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한 경우도 있지만 비명횡사한 케이스도 많다. 이들이 살아있다면 국내 최고 기업의 황태자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겠지만 지금 그들은 서서히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불의의 사고’로 이별

 

지난 6일, 오전 경기도 가평에서 한 비보가 날라들었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차남이 개인별장 앞 강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숨졌다는 내용이었다.

 

최씨는 이날 오전 10시 55분쯤 가평군 설악면 미사리 홍천강에서 수영을 하기 위해 물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정신을 잃어 119 소방대원에 의해 구조됐다. 그는 곧바로 구리한양대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4시간 만에 숨졌다. 당시 목격자들은 최씨를 구하려고 물에 들어갔을 때 물에 약한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그는 최원석 전 회장과 둘째 부인인 가수 배인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지난 2011년부터 학교법인 공산학원 이사를 맡아 최 전 회장과 함께 경기 안성시 소재 동아방송예술대학을 경영해왔다.

 

최원석 가문의 아픈 상처는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가문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가문, 구본무 LG그룹 회장 가문, 신준호 푸르밀 회장 가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들 가문의 아들 모두 사고사를 당했기 때문이다.

 

정주영 전 회장의 아픔은 지난 1962년 4월 14일 정 창업주의 다섯째 동생인 고 정신영의 교통사고와 장남 정몽필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 꼽힌다.

 

고 정신영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중, 독일 함부르크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장 폐색증으로 타계했다. 정 창업주는 7형제 중 기자를 하던 정신영을 특히 자랑스럽게 생각해 아꼈다. 그를 정치에 입문시키길 희망할 정도로 애정을 쏟았다. 이 같은 애정은 정신영을 기리기 위해 ‘신영언론재단’을 설립한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고 정몽필은 1982년 4월 24일 당시 인천제철 사장으로 근무하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새벽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중 경부고속도로상에서 정몽필이 타고 있던 승용차가 트레일러 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그 자리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김우중 전 회장의 아픔은 장남 선재를 잃은 데 있다. 고 김선재는 미국 보스턴대학 유학시설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했다. 지난 1990년 11월 21일, 당시 김선재의 나이 23살 때의 일이다.

 

이 사고로 김우중 전 회장 일가는 한동안 깊은 슬픔에 빠져야 했다. 급기야 어머니였던 정희자 여사는 선재미술관을 설립, 비명횡사한 장남의 영혼을 위로하고 있다.

 

구본무 회장의 아픔은 더 하다. 20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비명횡사한 외아들인 구원모 때문이다. 구 회장 일가는 단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 급사함으로써 그 슬픔은 한층 더할 수밖에 없었다.

 

고 구원모는 어린 시절 LG그룹의 확실한 황태자였지만 지금은 구 회장 일가에게 커다란 상처로 남아있는 외아들이다. 지난 1990년대 중반 고등학생이었던 것으로 알려지는 그는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정확한 사인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LG그룹 관계자들이 철저하게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다만 급사라는 것만 확인될 뿐이다.

 

신준호 회장의 장남인 신동학은 2005년 6월 16일 오전 11시(현지시간) 태국 방콕공항 인근 한 서비스아파트(한국의 콘도와 유사) 6층에서 추락, 사망했다. 그는 이에 앞서 지난 2일 후배(남)와 함께 태국으로 입국했다. 18일에는 사업차 필리핀으로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변을 당했고 현지 경찰은 실족사로 사건을 처리했다.

 

‘자살’로 이승과 결별

 

한국경제 발전사에 커다란 획을 그었던 ‘현대그룹 가문’의 가족사는 파란만장하다.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형제와 아들 외에도 자살로 이승과 결별한 자식들이 많은 까닭이다.

 

지난 1990년 4월 현대가문에는 하나의 비보가 날아들었다. 정 창업주의 4남 정몽우가 자살한 것이다. 당시 현대알미늄 회장으로 재직했던 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으며 서울 강남 역삼동 모 호텔에서 음독자살했다.

 

그러나 비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2003년 7월, 정 창업주의 5남인 전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이 현대그룹 사옥에서 투신자살했다. 정 창업주의 뒤를 이어 대북 사업 바통을 이어받았던 그의 자살은 세간에 충격을 주기 충분했다.

 

삼성가문에도 두 명이 자살로 생을 달리했다. 고 이재찬 전 새한미디어 회장(당시 46세)은 지난 2010년 8월 18일 오전 7시 20분 경 서울 용산구 이촌동 D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그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손자이자 고 이창희 새한그룹 회장의 둘째 아들로 한때 전도유망한 젊은 기업인으로 불렸다.

 

이재찬은 1983년 경복고를 나와 1989년 미국 디트로이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수재다. 1986년 새한그룹에 사원으로 입사한 뒤 새한미디어 부사장을 거쳐 새한미디어 사장과 새한그룹 생활서비스부분장을 지냈다. 그러나 2000년 경 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경영권을 잃고 회사를 떠나는 불운을 맞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셋째 딸 이윤형씨(당시 26세)는 2005년 11월 21일 미국 뉴욕대에서 유학하던 중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1979년 4월 26일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와 부인 홍라희 사이에서 3번째 딸로 태어난 그녀는 대원외국어고등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였고 세간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재벌가의 막내딸로 남부러울 것이 없던 그녀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는지 정확한 자살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2006년 그녀가 보유하고 있었던 주식은 장학재단에 기부됐다.

 

지병’으로 세상과 결별

 

그런가 하면 지병을 이기지 못해 비운의 황태자에 이름을 올린 경우도 있다. 삼성그룹 가문의 고 전 새한미디어 회장과 SK그룹 가문의 고 최윤원 SK캐미칼 전 회장이 그들이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차남인 이창희는 지난 1991년 7월 20일 58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사인은 혈액암(백혈병). 그는 같은 해 3월 혈액암 판정을 받고 4개월 간 미국 볼티모어시 존스홉킨스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나 병세가 악화되면서 세상을 떠났다.

 

고 최윤원 SK캐미칼 전 회장은 SK그룹의 창업자이자 고 최종현 창업주의 맏형인 고 최종건 회장의 장남이다. 그는 지난 2000년 8월 31일, 미국 시애틀병원에서 지병으로 인해 5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기업인으로서는 한창 일할 나이에 운명을 달리한 것이다. 최윤원은 1999년부터 지병으로 미국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그는 재벌2세임에도 불구하고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SK의 전문경영인체제 정착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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