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김봄내 기자]소액주주 권리 보호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도입된 집중투표제가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대그룹 상장사 가운데 집중투표제를 채택한 곳은 2곳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기업들의 철저한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집중투표제는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집중하는 ‘누적투표제’ 개념이다. 이 경우 자신들이 추천한 인사가 이사로 선임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경영진을 감시해야 하는 사외이사를 선임할 때 집중투표제는 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0대그룹 상장 계열사 92곳 중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곳은 SK텔레콤과 한화생명보험 2곳뿐이다. 이 제도가 도입된 지 14년째지만 대기업들의 외면 속에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전자 등 상장 계열사 17곳 가운데 집중투표제를 채택한 곳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대기업들도 비슷하다. 현대자동차(10곳)와 LG(11곳), 롯데(8곳), 현대중공업(3곳), GS(8곳), 한진(5곳), 두산(6곳) 등의 그룹도 집중투표제를 채택하지 않았다. 반면 SK그룹은 상장 계열사 18곳 중 1곳, 한화그룹은 6곳 중 1곳에서 집중투표제를 채택해 눈길을 끌었다.
현행 상법에는 기업이 정관에 규정을 두면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이를 악용(?)해 집중투표제를 외면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 이유는 총수의 의결권 행사와 이사회 장악에 걸림돌이 된다는데 기인한다.
한편 법무부는 지난달 일정 자산 규모 이상의 상장사에 대해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상법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집중투표제를 정관에서 배제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재계의 반발은 거세다. 때문에 집중투표제가 다시 운명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재계는 집중투표제가 경영 자율성을 침해하고 자칫 외국계 자금으로 하여금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준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집중투표제가 재계 반발로 무산될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