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꺾기는 은행이 고객에게 대출을 해줄 때 예금이나 펀드, 보험 등 금융상품 가입을 강요하는 구속성 행위로 대출이 필요한 고객 입장에서는 대출 과정에서 제약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가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8일 서태종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꺾기와 보험사기 등을 민심침해 ‘금융5대악’으로 규정하고 이를 척결하기 위해 특별대책단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고객 의사에 반하는 금융상품 가입 권유는 모두 불법으로 간주하고 관리감독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실천의지를 표한 것이다.
농협 관계자, 20억원 가량 요청(?)… 친형에 친아들까지 동원해 총 7억7000만원 가입
D사를 운영하고 있는 S회장은 지난 2010년 담보신탁으로 6곳(남서울·송파·영동·일산·안동·순천)의 단위조합으로부터 610억원의 대출을 진행했다.
S회장은 이 과정에서 “대출진행 시 농협담당자들이 보험 등 각종 금융상품 가입을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밝힌 은행직원의 요구 규모는 20억원 가량으로 금융당국이 판단하는 상식적인 꺾기의 수준을 훨씬 웃도는 규모다.
보통 금감원 등 정부가 꺾기로 보는 규모는 대출금액 대비 1% 선으로 금융당국이 꺾기의 마지노선으로 보는 규모의 세배를 넘는 수준인 셈이다.
S회장은 이 가운데 총 7억7000여만원의 저축성 보험 등에 가입했다. 은행관계자가 제시한 수준은 아니지만 금융당국이 이른바 꺾기로 판단하는 기준을 넘어선 것이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각 지점에 확인해본 결과 S회장은 5억원~6억원 규모의 저축성보험에 가입했으며, 그의 주장과 달리 농협 직원들은 ‘여유가 되면 하라’고 말한 것이지 강제성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했다”고 해명했다. 꺾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틀 후 다시 연락을 취한 이 관계자는 “확인해본 결과 S회장이 가입한 규모는 4억7700여만원 규모이며 2012년 해지했고 해지금은 4억9600여만원으로 도리어 1900만원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S회장이 건네 준 자료에는 그가 6곳의 단위농협을 통해 2010년 4월부터 2010년 9월까지 총 7억7000여만원 규모의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돼 있다. 뿐만 아니라 S회장 외에도 동일한 성씨를 갖고 있는 또 다른 2개의 이름이 보험에 가입돼 있었다. S회장의 친아들과 친형이다.
S회장은 “자신도 모자라 친형과 자신의 아들까지 동원해 농협 측이 제시한 보험에 가입했다”며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다.
가입 당시 금액 또한 최소 2000만원부터 최대 1억원으로, 일반인들이 쉽게 넣을 수 있는 금액이라 보기 어렵다는 것이 금융권 관계자의 시각이다.
정부 규제 노력에도 현장에서 꺾기 관행 여전
서 회장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 NH농협은 서태종 금감원 부원장이 선포한 '금융5대악' 척결의 레이다망에 포착될 공산이 크다. 더욱이 또 다른 의심 사례가 제기된다면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국회정무위원회 이운룡 의원(새누리당)이 금감원 및 시중 은행으로부터 받은 ‘구속성 상품(꺾기) 판매 의심 사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총 5만4585건의 의심 사례가 발견됐다.
이를 금액으로는 보면 5조1110억원으로 여신거래액의 절반(49.1%)이나 된다.
중소기업 중앙회가 385곳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은행 꺾기 실태 및 정부 꺾기 규제에 대한 중소기업 의견조사‘를 실시한 결과 10곳 가운데 1곳은 여전히 은행의 꺾기 관행을 현장에서 직접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입요청을 받은 금융상품의 금액이 대출액 대비 1% 미만인 경우가 82.4%나 됐다. 이는 정부가 규제하고 있는 꺾기의 마지노선을 넘지 않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은행권의 금융상품 가입 압박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현재 구속성 예금 대책의 허점이 많아 오히려 꺾기가 음성화하고 있다”며 “보다 강화된 내부와 처벌기준을 적용하고 고객의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은행의 꺾기 관행이 심각하다고 판단해 지난해 3월부터 규제와 처벌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자금난으로 금융권 대출이 절실한 중소기업계에서는 여전히 꺾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