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의 창업주 고 김종희 회장은 생전 지인들에게 ‘다이너마이트 김’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화약사업을 하면서 다이너마이트를 독점 생산하는 기업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정해진 장소,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터지는 다이너마이트와 경영방식이 닮았기 때문이다.
1922년 11월 충남 천안에서 태어난 고 김 회장은 유년시절부터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폭발성을 보였다. 당시 수재들이 다녔다는 경기공립상업학교를 다니던 고 김회장은 일본학생들과의 싸움으로 인해 원산상업학교로 전학을 하게 된다.
일본학생 4명과 한국학생 3명이 싸우는 것을 보고 정당치 못한 싸움이란 판단이 든 고 김 회장은 싸움에 뛰어 들어 결국 퇴학처분을 받게 된 것. 원칙이 정해지면 실리를 포기하고서라도 다이너마이트와 같이 폭발해 버리는 그의 경영철학은 이때부터 굳어졌는지도 모른다.
고 김 회장이 화약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42년 일제하의 화학독점판매회사인 조선화약공판에 입사하면서 부터다. 이후 1952년 부산 피난시절, 고 김 회장은 이때의 경험을 되살려 한국화약을 창업한다.
화약에 대한 기초지식을 갖춘 데다 계산에 밝고 기억력이 뛰어난 고 김 회장은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폭발성으로 기업을 일궈나갔다. 당시 화약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가 순수 국내기술로 최초로 국산화한 다이너마이트를 생산할 수 있도록 했고, 화약의 안정적 공급을 통해 국가 재건과 근대화가 원활히 진행되는데 큰 도움을 줬다.
이를 발판으로 고 김 회장은 1970년대 무역, 건설, 정유, 석유화학, 기계, 금융, 식품 등으로 영역을 확산해 지금의 한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 같은 사업들은 국가 기반 산업 육성에도 큰 영향을 미쳐 ‘사업보국’의 경영철학을 몸소 실천하기도 했다.
<kjtimes=김봄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