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Jtimes=정소영 기자] 국제해사기구(IMO)가 탄소세를 포함한 국제 해운업의 새 규범을 도입하면서, 오랫동안 사각지대에 머물던 해운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에 중대한 전환점이 마련됐다. 그러나 제도의 틀을 마련한 것과 달리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할 실질적인 감축 목표 설정에서는 여전히 아쉬움을 남겨, 대한민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보다 적극적인 목표 설정과 이행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1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83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83)에서 IMO는 해양오염방지협약(MARPOL) 부속서를 개정해 ‘넷제로 프레임워크’(Net-Zero Framework) 내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기조치 규제안’의 새로운 규범을 공식 승인했다.
국제 해운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를 차지하고 있으며, 글로벌 물류 수요 증가와 함께 그 비중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해운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은 각국 정부가 아닌, 국제기구인 IMO 차원의 규제를 통해 추진되고 있다. 이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파리협정 결과에 따라, 해운 부문이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에는 포함되지 않고 ‘국제 벙커링‘이라는 독립 항목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기조치 규제안’ 포함 넷제로 프레임워크 최종 승인
IMO는 2023년 ‘2050 탄소중립’을 공식 목표로 설정했으며, 이번 MEPC 83에서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중기조치’(Mid-term measures)를 주요 의제로 논의했다. 그 결과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기조치 규제안’을 포함한 넷제로 프레임워크가 최종 승인된 것이다. 이번 규제안은 오는 2027년부터 5,000톤 이상인 대형 선박을 대상으로 적용된다.
규제안의 핵심은 선박이 사용하는 연료의 ‘온실가스 집약도’(GFI, Greenhouse Gas Fuel Intensity), 즉 온실가스 배출 수준을 기준으로 감축 목표를 정하고 이행 여부를 평가하는 데 있다.
가령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선박의 경우, 초과 배출량만큼 벌금 개념의 ‘보완 단위’(RU, Remedial Unit)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탄소세를 납부해야 한다. 반면 목표보다 더 많은 양을 감축한 선박의 경우, 남은 감축분을 ‘초과 단위‘(SU, Surplus Unit)로 인정받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이는 탄소 배출을 적게 할수록 선박에 인센티브가 돌아가는 구조로, 국제 해운업이 온실가스 배출이 보다 적은 연료를 선택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기능적 조치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또한 이번 합의는 수년에 걸친 논의와 복잡한 외교 협상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번 MEPC 83에서도 화석연료 경제 기반의 국가들이 기후위기 취약국이 주장하는 조치에 강력히 반대하는 등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는데, 이러한 난항을 거쳐 국제 해운 부문 온실가스 감축의 첫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률 최대 10% 그칠 전망...기존 20~30% 감축 달성 역부족 ‘우려’
하지만 긍정적인 평가만을 내리기엔 어렵다. 이번에 승인된 연간 감축 목표량은, 2023년 IMO 176개 회원국이 합의한 ‘2050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교통·환경 싱크탱크인 T&E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계획이 온전히 이행되더라도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률은 최대 10%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2023년 IMO가 제시했던 ‘2030년까지 20~30% 감축’을 한참 못 미치는 수치로, 기존 목표를 달성하는 것조차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결국 제도가 마련됐다는 사실에 안주해서는 안 되며,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실질적인 감축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개입과 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다.
특히 오는 10월 예정된 넷제로 프레임워크의 최종 채택 과정에서는 세부 규칙에 대한 조정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때 탄소세가 과도하게 낮게 설정되거나, 특정 연료 및 항로에 예외가 허용될 경우, 제도는 실질적 감축을 이끌어내기보다는 ‘무늬만 녹색 전환’에 그칠 위험이 크다. 따라서 향후 협상에서는 구조적 후퇴를 철저히 경계하고, 야심 있는 정책 설계와 실효성 있는 규제 도입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 “대한민국, 세계 1~2위 조선업 강국이자 7위권 해운 국가로 해운 탈탄소 선제적 대응 필요”
대한민국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비록 해운 부문 배출이 국가 NDC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2023년 해양수산부는 ‘2030년까지 2008년 대비 60% 감축‘이라는 목표를 선언하며, IMO의 감축 목표보다도 최대 40%p 높은 수준을 약속한 바 있다. 이러한 선언에 걸맞게 이번 MEPC 83에서 나온 연간 감축 목표량보다 더욱 선제적인 감축을 해나간다면, 2050 탄소중립을 이끄는 ‘기후 모범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은 올해 4월 ‘제10차 아워오션 콘퍼런스’(OOC)를 주최하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해양장관 회의를 주관할 예정인 만큼, 해운 탈탄소 선도국으로서의 위상과 책임이 함께 기대되고 있다.
더욱이 대한민국은 세계 1~2위 조선업 강국이자 7위권 해운 국가로, 국제 해운업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 역시 선제적 대응의 필요성을 높인다. 우선, 정부는 비화석연료 선박이 다니는 ‘녹색해운항로’ 확대를 위한 지원을 더욱 강화해, 향후 국내 해운사들의 탄소세 부담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비화석연료 선박 수요 증가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국내 조선소에 대한 지원을 늘려, 조선업의 미래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 역시 병행돼야 한다.
탄소중립을 위한 항로가 이제 막 열렸다. 하지만 그 항로를 끝까지 완주하기 위한 준비는 지금부터다.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정교한 설계와 흔들림 없는 실행이 뒤따를 때, 비로소 ‘2050 탄소중립‘ 목표는 현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