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정병철 대기자]이병철 회장은 골프방송도 빼놓지 않고 녹화해 두었다가 보곤 했다. 그는 세계 각국의 TV프로그램 중 취미와 관련된 프로를 빼놓지 않고 보는데 특히 골프방송은 빼놓지 않고 보았다. 세계 4대 골프대회인 US오픈, 영국오픈, PGA선수권, 마스터즈 등을 각국에 있는 삼성지사를 통해 비디오 공수를 받으면서까지 ‘명프로들의 명샷’을 안방에서 즐겨 보았다.이 회장은 교우관계도 폭 넓었다. 그와 골프장에서 ‘인간’과 ‘기업’ ‘세상’을 함께 얘기했던 인사들로는 김용원(전 전경련회장), 김봉제(전 중소기업 협동조합중앙회회장), 김진형(전 한국은행총재), 신현확(전 국무총리), 김남중(전 전남일보사장), 신용호(대한교육보험회장), 최치환(전 국회의원), 신용남(전 국회의원), 민복기(전 대법원장), 김성곤(쌍용그룹 창업주), 김용주(대한방직 회장)
[kjtimes=정병철 대기자]이병철 회장의 골프세계를 알면 삼성의 경영이념을 알 수 있다.삼성이 추구하는 ‘제일주의’와 ‘무한추구’ 정신은 이병철 회장의 기업정신과 그 뜻이 같다고 볼 수 있다.‘골프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이 회장은 라운딩을 할 때마다 동행한 측근들에게 이 말을 좌우명처럼 들려주었다.골프장 18홀 파노라마에서 이병철 회장은 삼성의 기업 정신을 키워왔다. 이 회장은 격동의 30년 동안 기업이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동안 한국 최대의 제력을 쌓고 거대한 기업군을 이루는 밑바탕에는 골프가 있었다. 그는 골프를 통해 재력가의 고독을 이겨왔다. 그가 틈만나면 골프장을 찾고 골프를 통해 신규 사업을 구상하고 거대한 기업군으로 키워온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 회장은 30년 동안 주중 같은 시간에 어김없이 골프장 코스를 돌았다. 이 회
[kjtimes=정병철 대기자]이병철 회장은 큰 아들 맹희, 둘째 아들 창희와 종종 필드를 찾았다. 이 회장은 골프를 통해 아들에게 생존철학을 익히도록 했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골프를 삼성의 덕목운동으로 여겼던 것도 선친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이 회장이 안양골프장을 만들 당시 일명 사카린 밀수사건인 한비사건이 터져 어려웠던 시기였다. 사실 한국비료 사건은 이 회장과는 관련 없는 사건이었다.한국비료 사건은 100만 달러 리베이트가 원인이었다. 이 회장은 한국비료를 건설하기에 앞서 일본 마쓰이사로부터 4200만 달러 차관을 들여왔다. 기업과 혹은 국가 거래에서 차관이나 기계 도입 같은 것에는 일종의 리베이트가 붙는 것이 관례였다. 이 때 마쓰이사가 삼성측에 제공한 리베이트가 100만 달러였다. 한일국교 정상화가 수립되지
[kjtimes=정병철 대기자]이병철 회장은 골프장 조경에 탁월한 안목을 가졌다. 나무에 비료를 줄 때도 꼭 동서남북 4군데 골고루 주었다. 한해는 동서로, 다음해는 남북쪽으로 비료를 줘 나무가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잘 자랄 수 있도록 했다.이 회장은 정성스럽게 가꾼 나무가 결실을 못보면 반드시 그 원인을 찾아 문제점을 보완했다. 또 골프장을 돌다가 나무가 골프장 홀과 조화롭지 못하면 정원사를 불러 나무위치를 새로 지정해 주는 등 사소한 것도 빼놓지 않고 신경을 썼다.이 회장이 골프장에 대한 애착이 어느 정도였는지 안양골프장 클럽하우스가 완공되기 전 간이 하우스를 설치하고 공을 쳤다. 당시 함께 골프를 친 사람들이 이 회장이 워낙 골프장 일에 매달리자 “회장님 골프장하고 다른 공장하고 비교할 때 어느 쪽이 비중이 더 큽니까?” 라고 물었다. 그랬
[kjtimes=정병철 대기자]이병철 회장은 한국에 골프장다운 골프장을 건설하고 싶은 야망은 가득했지만 국내 골프장 건설 기술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최고의 명문 골프장을 설계했던 미야사와조에게 안양골프장 설계를 의뢰했다. 이 회장은 설계 의뢰에 앞서 머리 속에는 이미 안양골프장의 지형을 담고 있었다. 미야사와는 이 회장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 오늘날 명문 안양골프장을 설계했다.이 회장은 골프장 만들기 전보다 만든 후가 더 중요하다며 안양골프장을 철두철미 하게 가꾸어 나갔다. 그에게 있어서 안양골프장은 자식과도 다름없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듯 이 회장은 모든 사업에 애착을 가졌지만 이 중 안양골프장을 분신처럼 가꾸었다.이 회장은 골프장 조경에도 일본 최고의 조경 기술자인 가꾸다 사부로에게
[kjtimes=정병철 대기자]이병철 회장의 골프세계는 그의 기업정신과도 일맥상통 된다. 이 회장은 사업에 있어서도 ‘완전무결 무한 추구’였다. 그는 한 번 일을 시작하면 완벽하게 끝을 보는 성격으로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때문에 이 클럽의 회원이 된다는 것은 회원 중 한 사람이 죽거나 혹은 명예를 더럽혀서 쫓겨나가는 것 이외엔 불가능했다. 가입비는 다른 골프장에 비해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지만 그곳 회원으로 가입한다는 자체를 명예로 여겼기 때문에 지도층 인사만 되면 가입하기에 안간힘을 다했다. 골프장 회원으로 가입하기가 얼마나 까다로웠는지, 역대 일본 수상 중에도 기시와 다나카 수상 정도가 회원이었고, 특히 외국인이 회원으로 가입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골프장에는 외국인이 한 사람 가입돼 있었다. 다름아닌 이
[kjtimes=정병철 대기자]이병철 회장 집으로 초대된 신용남 사장은 덕담을 나누며 신뢰를 쌓았다. 당시 오갔던 덕담 한 토막.이 회장 집에는 선물이 많았다. 인삼, 홍삼 등 건강식품에는 ‘회장님 건강하세요’라는 인사 글귀가 보였다. 그것을 신 사장이 엿본 것을 알았는지 한마디 툭 던졌다.“신사장 저거 먹는다고 건강하겠소? 그저 밥 잘 먹고 잠 잘자고 골프 잘하면 그것이 건강 지키는 비결이 아닙니까?” 라며 자신의 건강비결을 알려줬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저런 건강식 다 필요없어요. 선물이라고 갖다 주니 성의도 있고 해서 받았지만 난 골프장에서 걷고 운동하는 것이 최고의 보약입니다” 라며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이 회장은 그 자리에서 골프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고 말하며 골프는 정신을 맑게 해주는 최고의 운동이라는 것도 덧붙였다. 이는 훗날 삼성
[kjtimes=정병철 대기자]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골프이론에서도 박식했다. 프로골퍼들도 그의 해박한 골프지식에 입을 쩍 벌릴 정도였다.이 창업주는 골프와 관련 주요 기사가 보도되면 국내외 신문을 막론하고 비서진들에게 철저히 스크랩을 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그는 기술 쪽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암기했다. 이 창업주가 가장 좋아했던 프로골퍼는 보비존슨 이었다. 골프기술의 아버지로 불렸던 보비존슨의 기술책들은 1960년대 국내에서 구입하기가 힘든 귀한 책이었다. 일본에 그 책이 있었던 관계로 동경 삼성지사는 보비존슨 기술책뿐만 아니라 골프용품과 골프경기 등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즉시 서울의 삼성본관 이 회장 집무실로 보냈다. 보비존슨 책을 일일이 정독하며 그 이론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연덕춘에게 다시 스윙기법을 묻는 등 그 열의가 대단했
‘강한 일본’을 외치는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가 재집권에 성공했다. 보수적 색채의 정책공약을 선명히 했던 아베의 자민당 내각이 과연 어떤 외교 및 안보 정책을 펼칠 것인지, 한국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촉각이 곤두세워지고 있다. 아베 전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선거과정에서 제시했던 자민당의 정책공약에는 여러 가지 우경화 공약이 포함되어 있다. 그가 총리로 취임하면 그 공약들이 상당수 실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한국과의 마찰이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는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인사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총리를 맡았을 당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하지 못한 것이 ‘통한’이라고 얘기하던 총리가 바로 그였다. 그는 헌법을 개정해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변경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교과서 검정 기준을 바
[kjtimes=정병철 대기자]이병철 고 삼성회장의 평균 골프실력은 80타대다. 그의 아이언 샷은 주변 사람들을 놀랄 정도로 정교함을 자랑한다. 퍼터 기술 또한 완벽하다. 그린에서 라이를 읽는 눈과 퍼터에 눈을 맞추는 각도가 예리하다. 그가 드라이버 기술만 완벽했다면 기업인들 중 골프 1인자가 됐을 것이다. 이 회장의 골프는 흠잡을 데가 없는 완벽함 그 자체였다.국내에서 삼성이 한창 성장할 때인 60년대부터 이 회장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필드에 나갔다. 그는 필드에 갔다온 후 스윙에 이상이 있으면 지금은 작고한 연덕춘 프로를 따로 불러 스윙을 점검하는 등 열의가 대단했다. 연덕춘은 우리나라 프로골퍼 1호로서 원조로 불린다. 이 회장의 레슨 담당이기고 했다. 이 회장은 일본프로골퍼 고바시상과 한국 연덕춘 프로를 통해 골프를 배웠기 때문에 한일 골프 고수들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라는 이름을 거론했을 때 불현듯 김대중 전 대통령이 떠올랐다. 살아생전 두 사람은 서로 간 반목의 시간을 보내야 했고, 어쩌면 인생 최대 라이벌로 살아왔다.박정희 전 대통령은 장기집권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고 독재를 일삼았다. 김 전 대통령은 음모와 술수, 연금과 구금 등으로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산업화 세력의 상징인 박 전 대통령과 민주화 세력의 상징인 김 전 대통령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일본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다.일제 강점기 태어났던 두 사람(박정희 1917년, 김대중 1924)은 우선 ‘일본어’에 능통하다.두 사람이 일본어에 능통했던 것은 당시 한국어 말살 정책을 펼쳤던 일본이 한국 학교에서 한글 교육을 폐지하고, 일본어를 강제로 사용하고 배우도록 했기 때문이다.일본은 또 식민지
4일 TV 대선 토론은 서울 시내 한 대폿집에서 봤다. 이날 TV 토론을 지켜보던 술꾼들의 공통된 반응이 “이정희 참 똑 부러지게 말 잘한다”였다. 누가 봐도 이정희는 말을 참 잘했다. 경력만 봐도 똑 소리가 난다. 서울법대 출신에 사법고시를 패스한 변호사. 얼굴에도 똑똑함이 묻어난다. 영화의 슬픈 장면을 보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릴 것만 같은 왕눈이, 그 눈을 덮는 큰 안경. 요즘말로 공부 잘하는 전형적인 범생이 얼굴이다.헌데, 이정희 후보. 그녀의 입에서 참으로 끔찍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례와 독기서린 눈동자, 증오에 찬 용어, 안하무인의 발언. 토론을 하러 나온 것이 아니라 ‘박근혜를 떨어트리러 나왔다’는 발언에서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1968년 김신조가 ‘박정희 목 따러 왔다’고 한 일성처럼 들렸다. 그것은 대한민국 정당에 소속된 정치
한국 재벌 총수들의 골프 실력은 어땠을까. KJ타임즈가 한국 골프사에 얽힌 숨은 자료를 발굴해 한국 역대 총수들의 골프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필드에서 웃고 즐기며 모든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리고자 했던 총수들의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독자 여러분들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오랜 기간 준비한 만큼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주 [kjtimes=정병철 대기자]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1910.2.12~1987.11.19) 회장은 1910년 2월 경남 의령군의 1천섬 지기 부농인 이찬우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서울 중동중학교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를 중퇴했던 이 회장은 이후 1936년 마산에서 협동정미소를 설립, 정미업으로 사업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이어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창업하면서 ‘삼성’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로 들어선다. 1945년 해방 후 사
'갸루상'의 인기가 식을줄 모른다. 갸류상은 인기 개그프로 ‘개그콘서트’의 ‘멘붕스쿨’ 코너에 등장하는 캐릭터다. 독특한 분장과 ‘사람이 아니므니다’ 등의 멘트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갸루상’으로 인기몰이 중인 개그맨 박성호는 ‘아니무니다’와 ‘갸루갸루’라는 제목의 수록곡으로 디지털 싱글 ‘아니무니다(Animunida)’를 발매했다. 게임 내에서 역시 갸루상의 엽기적이고 코믹한 이미지가 그대로 반영됐다. 한 게임업체는 기괴한 화장과 독특한 말투로 최근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박성호의 ‘갸루상’ 캐릭터까지 출시했다. 갸루상이 한국에서 이렇게 빨리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등장한 것은 개콘 맨붕스쿨에 등장하면서다. 시청자들은 갸루상 등장에 박수를 치고 웃고 환호한다. ‘갸류’는 영어 ‘걸(Girl)’을 일본어로 발음한 것이다. 일본에
일본 오사카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시 중 하나다. 이명박 대통령이 오사카 출신이라는 사실은 널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오사카는 한국인에 대해선 우호적이고 친근감이 높은 도시다. 오사카에선 일본어를 몰라도 쇼핑하거나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 큰 불편함이 없다. 식당은 물론 쇼핑 거리에 즐비한 매장에는 한 집 건너 한국어로 된 안내판이 붙어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방문했던 오사카 쇼핑가와 식당에는 한국어로 된 안내 표기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최근 일본 내각부가 9월 27일~10월 7일 전국 성인 남녀 18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외교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에 대해 “친하다고 느낀다”는 답변은 39.2%로, 작년(62.2%)보다 23.0%포인트 하락했다. 한류(韓流)의 영향으로 급상승했던 호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