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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①]‘저항’과 ‘직설’의 정치일생 스토리

민주화 투쟁과·인권 증진 외길…군사독재 종식과 민주체제 정착 기여 평가

[KJtimes=김봄내 기자]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1993년부터 1998)을 지낸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22일 오전 022분 향년 88세로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한국 현대정치를 양분해 이끌어왔던 김대중·김영삼으로 상징되는 양김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은 19271220일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에서 아버지 김홍조(金洪祚)와 어머니 박부연(朴富蓮)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장목소학교, 통영중학교, 경남고등학교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그는 19543대 민의원 선거에 최연소로 당선돼 주목을 받았다. 이후 제 5·6·7·8·9·10·13·14대 국회의원까지 9선 의원을 지냈다.


대도무문을 좌우명으로 삼았던 김 전 대통령은 평생을 민주화 투쟁과 인권 증진의 외길을 걸으면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자신의 신조처럼 군사독재 종식과 민주체제 정착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전 대통령은 야당 당수 세 차례, 야당 원내총무 다섯 차례를 역임하며 평생의 민주화 동지이자 정치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군사정권에 맞섰다. 양김의 상도동·동교동은 민주화 세력의 양대 산맥으로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야당 당수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다 1979년 총재 직무를 강제로 정지당하고 의원직에서도 제명되는 고초를 겪었다.


신군부 정권 시절이던 1980년대 들어서는 23일간의 단식 투쟁, 장기간의 가택연금 등의 모진 정치적 박해와 고난을 겪으면서도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 ‘876월 항쟁주도 등을 통해 민주화 운동을 이끌며 군사정권 기반 약화와 직선제 개헌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후 대선 여러 차례 대권에 도전했다.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채 통일민주당 후보로 독자출마한 198712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시 민주정의당 노태우(盧泰愚) 후보에게 패해 2위로 낙선했다.


하지만 민주정의당신민주공화당과의 3당 합당을 통해 탄생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에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합류, 박철언 전 의원과의 사활을 건 대결 끝에 대선후보를 쟁취했다.


김 전 대통령이 군정 종식을 이뤄내며 문민시대를 연 것은 1992년 대선 때다. 당시 필생의 라이벌 김대중(金大中)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됐다. 재임 기간 칼국수로 상징되는 검소함과 청렴함을 표방하면서 하나회 청산과 금융·부동산 실명제 도입, 지방자치제 실시, 전방위적 부패 척결 등을 통해 사회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는 성과를 냈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PK(부산·경남)를 지역 기반으로 삼은 민주화 세력을 일컫는 상도동계의 영원한 리더로서 오랫동안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평생 거르지 않다시피한 새벽 조깅과 영문이니셜 애칭 ‘YS’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호남지역을 포위한 ‘3당합당’, 상도동으로 대변되는 가신정치는 부()의 유산으로 기억된다.


한편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은 이날 긴급 브리핑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이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으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오 원장은 김 전 대통령이 지난 19일 정오께 고열과 호흡곤란 증상으로 입원했으며 상태가 악화돼 21일 오후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악화돼 사망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서거 당시 김 전 대통령 옆에는 차남 현철씨 등 가족이 자리해 임종했으나 부인 손명순 여사는 곁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대통령은 올해 88세로 고령인 데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종종 서울대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아왔으며 그때마다 며칠씩 입원했다. 19일 입원하기 전에도 이달 10일 검진 차 병원을 찾아 17일까지 입원한 뒤 퇴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손명순 여사와 딸 혜영(63), 혜정(61), 혜숙(54), 아들 은철(59), 현철(56) 씨 등 23녀가 있다.









[스페셜 인터뷰]‘소통 전도사’ 안만호 “공감하고 소통하라”
[KJtimes=견재수 기자]“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공감과 소통이 어려워진 것이다.(공감과 소통의) 의미가 사라지고 충동만 남게 됐다.” 한국청소년퍼실리테이터협회(KFA: Korea Facilitators Association)를 이끌고 있는 안만호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사회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또 이제 공감능력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비대면 사회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소통 전문가로 통하는 안 대표는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이나 SNS, 유튜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성은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지식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며 “요즘 인간의 탈사회화가 진행되는 것에 비례해 인간성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거리를 두더라도 우리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체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이자 연대라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밝혀졌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