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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②]“민주화의 헌신”…그의 어록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日엔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직격탄

[KJtimes=이지훈 기자]‘대도무문을 좌우명으로 삼았던 고 김영삼 전 대통령. 김 전 대통은 평생을 민주화 투쟁과 인권 증진의 외길을 걸었다. 그러면서 군사독재 종식과 민주체제 정착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저항직설로 대변되는 그의 어록은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그러면 거칠고 직설적인 화법도 마다하지 않았던 김 전 대통령이 남긴 어록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장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1979년 국회의원에서 제명되자 순교의 언덕, 절두산을 바라보는 이 국회의사당에서 나의 목을 자른 공화당 정권의 폭거는 저 절두산이 준 역사의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야 만다고 말했다.


1985년 한국일보 인터뷰에선 “10·26 뒤 나는 대통령이 돼 꼭 4년 단임을 하고 물러나고 싶었다. 그러나 1983년 단식투쟁을 통해 대통령을 하겠다는 욕심을 완전히 버렸고 이런 생각을 버리게 해 준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싶다고 심경을 밝혔다.


1987년 관훈클럽 토론에선 노태우씨는 전두환 대통령과 같은 군인 출신으로서 12·12 사태를 일으켰고 일선 군부대를 빼내 쿠데타를 한 사람이다. 쿠데타 한 사람이 대권을 잡는 것은 군정의 연장이다고 강변했다.


1987년 지리산 등반 중 기자회견에선 단식 이후 마음을 완전히 비웠다고 생각했는데 설산을 바라보니 더 비워야겠다는 아쉬움이 살아나는 것 같다고 전했다.


1987년 중앙일보 인터뷰에선 산행 도중에 많은 낙오자도 있었다. 민주화도 이와 같다. 민주화의 길은 그만큼 고행의 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민주화 산행에 있어서 최종 고지의 200전방에 와 있는 셈이다고 강변했다.


1987년 국회의사당 단식농성 중 인터뷰에선 대통령 후보 지명은 축제 속에 이뤄져야 한다. 박종철군 사건으로 온 국민이 우울한 지금, 민정당의 6·10 전당대회에서 하는 대통령 지명대회는 초상집에서 춤을 추는 격이다고 지적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 직후 기자회견에선 선거혁명을 통한 민주화가 내 지론이었으나 이 정권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젯밤과 오늘 내내 생각한 끝에 이 정권을 완전히 타도할 것을 결심했다. 나는 박정희 정권을 타도시킨 사람이다. 기필코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타도할 것이다고 의지를 천명했다.


1993년 대통령 취임사에선 신한국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눈물과 땀이 필요하다. 고통이 따른다. 우리 다 함께 고통을 분담하자고 호소했다.


1993년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선 우리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고통을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 나는 대통령인 나 자신이 솔선해야 한다는 각오 아래 오늘 나의 재산을 공개하는 바이다고 밝혔다.


1993년 청와대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자금을 받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면서 추석 때 떡값은 물론 찻값이라도 받지 않을 것이다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1993년 국가기강확립 보고회의에선 새 정부에 있어 국가기강 확립의 대도(大道)는 하나도 윗물 맑기요, 둘도 윗물 맑기다면서 고위공직자의 청렴성을 강조했다. 1993년 최형우 민자당 사무총장 아들의 대입 부정과 관련해선 우째 이런 일이이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1993년 신경제계획 민간위원과의 조찬에선 토지와 건물 등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이 고통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1993년 주요 인사 접견에선 요즈음 개혁을 하다 보니 환부 하나를 찾아내 도려내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한다. 32년의 권위주의 시대가 만든 '한국병'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실감한다고 안타까워했다.


1993년 모범수출업체 대표들과 오찬에선 개혁의 속도를 자전거 타기에 비유하면서 너무 급히 달려도 위험하지만 달리다가 멈추면 쓰러진다고 말했다.


1993년 금융실명제에 관한 특별담화문에선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루어진다고 천명했으며 1993년 경제5단체장 회식에선 아직도 골프를 열심히 치십니까며 질타했다.


1993년 계룡대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선 군 개혁을 단행해 문()은 문답게, ()는 무답게, 문과 무가 각기 제자리를 찾도록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1994개의 해의미를 되새기며 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사랑을 받지만 또 한편으로는 달리는 기차를 보고도 짖는다. 그러나 개가 짖는다고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1994년 신년 기자간담회에선 서울시 분할론을 부인하며 대통령으로서 정도를 걷고 당당하게 대도를 가겠다고 강조했고 1994년 대통령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선 지지율이 90%를 넘을 때는 너무 높아서 어지럽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민주국가에서는 반대도 있을 것이니 이제야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고 말했다.


1993년 서울대 졸업식 치사에선 분노와 저항의 시대는 갔으며 투쟁이 영웅시되던 시대도 갔다고 말했으며 1994년 민주평통 운영위원 접견에선 북한이 무모한 핵개발을 계속하며 서방의 인내를 시험한다면 반드시 자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고한다고 강변했다.


1994년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 소식에는 보름 후면 남북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의 장래를 위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키로 했는데 이 소식을 접하면서 아쉽게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1994년에는 태풍을 기다리는 것은 밤에 도둑이 들기를 기다리는 것 같지만 태풍이라도 와 비가 내렸으면 한다며 극심한 가뭄에 대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19948·15 광복절 경축사에선 남북한 사이의 체제경쟁은 이미 끝났다고 말했고 1994년 인천 북구청 세무비리 사건에 대해선 로마제국은 외침이 아니라 내부 부패로 망했다며 엄단을 지시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관련 대국민 특별담화에선 국민 여러분의 참담한 심경과 허탈감, 정부에 대한 질책과 비판의 소리를 들으면서 대통령으로서 부덕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비통해 했다.


1995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치인의 거듭된 망언에 대해 이번 기회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강변했다.


1996년 신한국당 전당대회 치사에선 저의 임기 중 대통령 중임제 도입이나 정경유착의 온상이 될 내각제 채택을 위한 개헌 또는 어떤 형태의 개헌도 단호히 반대할 것이다며 입장을 분명히 했다.


1996년 여야 및 국회 지도자들과의 회담에선 북한이 국지전을 일으키면 전면전으로 갈 수 있다고 지적했고 1997년 차남 현철씨의 한보사태 이권개입 의혹에 대해선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심경을 밝혔다.


1997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의식 불명인 최형우 의원을 문병하면선 최 의원 나요, . 빨리 일어나야지고 말했고 1997LA다저스 박찬호 선수 가족 초청 오찬에선 정상에 오르면 반드시 내려갈 때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1999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회동에선 국민들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말했으며 2001년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를 평가하면선 아버지와 딸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2003년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를 방문해 단식 중단을 종용하면선 나도 23일간 단식해 봤지만 굶으면 죽는 것은 확실하다고 권했으며 2008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김무성 의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나라당 공천심사가 엉망이라고 비판하면선 버르장머리 고쳐줘야 한다고 강변했다.









[스페셜 인터뷰]‘소통 전도사’ 안만호 “공감하고 소통하라”
[KJtimes=견재수 기자]“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공감과 소통이 어려워진 것이다.(공감과 소통의) 의미가 사라지고 충동만 남게 됐다.” 한국청소년퍼실리테이터협회(KFA: Korea Facilitators Association)를 이끌고 있는 안만호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사회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또 이제 공감능력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비대면 사회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소통 전문가로 통하는 안 대표는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이나 SNS, 유튜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성은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지식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며 “요즘 인간의 탈사회화가 진행되는 것에 비례해 인간성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거리를 두더라도 우리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체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이자 연대라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밝혀졌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