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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로그에서 활명수까지...장수 식품브랜드 탄생 비화

[KJtimes=김봄내 기자]국내외 식·음료업계에서 내로라하는 대표 브랜드들의 탄생 배경과 연혁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소비자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먹거리를 개발하여 제공하는 일인 만큼, 오래 전 창립할 시점부터 다른 어떤 것보다 건강을 생각하여 탄생한 브랜드라는 점이다. 창시자의 건강 철학으로 시작되어 성공할 수 밖에 없었던 브랜드들의 숨겨진 탄생 뒷이야기를 소개한다.

 

시리얼로 먹는 콘푸레이크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20여년 전인 1894년이다. 병원과 건강관리 시설을 겸하고 있던 요양원에서 근무하던 W.K. 켈로그와 의사이자 요양원을 경영하던 그의 형, 존 하비 켈로그 박사는 환자들을 위해 채식위주의 식단 개발에 힘쓰고 있었다. 두 형제는 퇴근 후에 밀을 롤러에 밀어 넣어 그래놀라 형태의 음식을 만들곤 했는데, 어느 날 잠시 다른 일을 하느라 자리를 비우고 돌아왔을 때 형제는 밀 반죽이 말라있는 것을 발견했다. 켈로그 형제는 이것을 롤러에 밀어 넣어 압착을 했고 각각의 낱알들은 눌러져 얇은 푸레이크 조각이 되어 나왔다. 또한 이것을 굽자, 바삭바삭한 맛을 살릴 수 있게 되었다. W.K.켈로그는 형에게 푸레이크 형태의 식사를 요양원 환자들에게 제공해보자고 제안하고, 곧 환자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음식이 되었다. 이 맛을 잊지 못한 환자들은 요양원을 퇴원하고 나서도 우편으로 푸레이크를 주문하게 되었고, 켈로그는 푸레이크 형태로 만들어진 밀을 포장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후 1906년에 훗날 전세계인들의 아침을 책임지는 켈로그 사를 설립하게 되었다. 1923년 켈로그사는 식품업계 최초로 영양사를 고용하고 1930년대에는 식품제조사로서는 처음으로 시리얼 박스 뒷면에 영양 정보, 조리방법, 제품 정보를 표기했다. 한국에는 1980년에 진출하였다. 환자들을 위한 건강식으로 출발한 켈로그 시리얼은 현재 다양한 맛과 종류로 출시되면서 간편하게 영양을 채울 수 있는 아침 식사로 전세계 수많은 가정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

 

한국 유기농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 원경선 원장은 국내 최초로 유기농을 시작해 그 업적이 초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위대한 농부다. 1914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풀무원 농장을 설립했으며 유기농과 환경운동, 평화운동, 생명보호운동에 평생을 헌신했다. 원 원장의 장남 원혜영 의원은 유기농의 가치를 상품화하면 더 널리 대중에게 이 좋은 것을 보급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마침내 1981년 서울 압구정동에 풀무원농장무공해농산물직판장이 문을 열었다. 풀무원 브랜드 정신은 원경선 원장의 생명존중과 이웃사랑정신을 바탕으로 정착되었다.

 

창사한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 국내 대표 식품 기업으로 자리 잡은 풀무원은 원 원장의 생명존중과 이웃사랑 정신을 계승하여 기아 구제, 환경 친화적 활동 등 사회적 기여에도 지속적으로 동참해오고 있다.

 

에비앙의 브랜드 스토리는 1789년 프랑스의 레쎄르 후작이 알프스의 에비앙 레벵이라는 마을에서 요양을 하던 중 땅의 샘에서 나는 에비앙 물을 먹고 자신의 신장결석을 치료하게 되었다는 데서 시작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이 마을과 샘물은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물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실제로 물속에 미네랄 등 인체에 효험이 있는 성분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1878년 프랑스 의학 아카데미는 에비앙 천연 미네랄 워터의 효용을 인정하였고 이후 에비앙이라는 브랜드가 탄생했다.

 

끓이지 않아도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아기를 위한 물을 생산하는데 주력해온 에비앙은 현재 건강하고 순수하고 고급스러운 제품 특유의 이미지로 세계 소비자에 각인되면서 브랜드 가치를 키워오고 있다.

 

활명수는 조선왕조 고종임금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던 1897년 당시 궁중 선전관으로 있던 민병호 선생이 궁중에서만 복용되던 생약의 비방을 일반 국민에까지 널리 보급 하고자 서양의학을 접목하여 개발한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이자 양약이다. 활명수를 개발한 민병호 선생과 아들인 민강 선생은 1897년 활명수를 대중화 시키기 위해 서울 순화동 5번지에 현 동화약품의 전신인 동화약방을 설립하였다.

 

'생명을 살리는 물' 이라는 뜻의 활명수는 4세대에 걸쳐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오며 소화제의 대명사로 확고한 자리를 굳혔다

 









[스페셜 인터뷰]‘소통 전도사’ 안만호 “공감하고 소통하라”
[KJtimes=견재수 기자]“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공감과 소통이 어려워진 것이다.(공감과 소통의) 의미가 사라지고 충동만 남게 됐다.” 한국청소년퍼실리테이터협회(KFA: Korea Facilitators Association)를 이끌고 있는 안만호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사회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또 이제 공감능력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비대면 사회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소통 전문가로 통하는 안 대표는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이나 SNS, 유튜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성은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지식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며 “요즘 인간의 탈사회화가 진행되는 것에 비례해 인간성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거리를 두더라도 우리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체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이자 연대라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밝혀졌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