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견재수 기자]노동계의 오랜 숙원이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러나 공사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 방식으로 정규직화가 진행되면서 곳곳에서 노사 간 갈등으로 파열음이 일고 있다.
한국도로공사(이하 도공)는 비정규직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의 정규직화 추진 과정에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도공은 애초 요금수납원의 자회사 정규직 전환을 꾀했으나 대법원이 지난해 8월 29일 요금수납원이 도공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집단소송에 대해 ‘요금수납원은 도공 직원이 맞다’고 최종 선고하면서 760여명의 요금수납원들이 직접 고용됐다.
이후 잇단 동일한 소송에서도 법원이 요금수납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도공은 법원의 선고를 수용해 요금수납원들을 직접 고용하는 수순에 돌입했지만 기존 수납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에 배치하거나 주거지에서 수백km 떨어진 원거리로 발령을 내면서 또 다른 갈등을 낳고 있다.
직접 고용된 요금수납원들의 상당수는 졸음쉼터 청소, 고속도로 주변 쓰레기 수거 및 분류 작업 같은 생소한 업무에 배치돼 일을 하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집과 거리가 먼 근무지에 배치되면서 보복성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이들 중 일부는 고속도로 주변 잡목 등을 제거하는 일에 투입됐다가 크고 작은 산업재해 사고를 당한 것으로 <KJtimes> 취재결과 확인됐다.
최가을(가명)씨는 도공에서 요금수납 업무를 했으나 대법원의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직접고용 원심판결 확정 선고에 따라 직접 고용된 이후 도로안전팀에 투입돼 고속도로 가드레일 주변 쓰레기 수거 등 청소 업무를 하던 중 발목을 크게 다쳐 한 달여간 병원 치료를 받고 최근 업무에 복귀했다.
최씨는 “(도로안전과로) 발령을 받은 첫 날부터 안전수칙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현장에 투입됐다”며 “처음 하는 일인 데도 회사에서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녀는 발목을 다칠 당시 현장 상황에 대해 “고속도로 가드레일 옆 산기슭 같은 곳에서 쓰레기를 줍다가 수풀에 가려 육안으로 확인이 잘 안되는 구덩이에 다리가 빠지면서 발목을 접질렀다”고 말했다.
이어 “구덩이가 깊어 손으로 짚다가 오른쪽 손목도 다쳤다”면서 “당시 다리를 디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해 병원에 가기를 요청했는데 앰뷸런스가 아닌 회사 차를 불러서 병원에 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다쳐 근무를 할 수 없게 돼 회사에 얘기를 했더니 병가를 내라고 했다”며 “일을 하다가 다쳤는데 왜 병가를 내라고 하느냐고 항의를 하니 그제야 산재 처리를 해줬다”고 토로했다.
산재 사고 이후 복직한 최씨는 여전히 도로안전과에서 근무 중이다. 그녀는 해보지 않은 일을 하다가 다쳐도 일을 못하겠다고 거부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며 “요금수납원들이 소속돼 있는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에서 사 측과 직접고용과 근로조건 등에 대해 교섭을 진행 중이기 때문에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도 논란거리다. 최씨에 따르면 도공은 지난해 대법원 판결(지난해 8월 29일)이 난 날부터 입사한 걸로 잡아 놓고 10월에 3개월치를 합쳐서 지급했다.
현재 도공 측과 교섭 단계라 향후 미지급된 차액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그러면서도 일단 직접고용 이후 현재까지 받은 임금은 최저임금 보다 못한 건 맞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최씨는 집이 경기도인데 근무지는 전라도 지역이다. 출퇴근이 어려워 회사에서 제공한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다.
최씨는 “가족과 떨어져 있어 많이 불편하고 저 같은 경우는 내년에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아들이 있어 더욱 힘든 상황”이라며 “다행히 남편과 아들이 이런 상황을 이해해줘서 참고 견디고 있다”고 가족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어 “지사장하고 면담 때 여기서 몇 년을 근무할 지 알 수 없고 또는 더 먼 지방으로 발령이 날 수도 있다고 했다”면서 “사실상 (회사를) 그만두라는 무언의 암시로 받아들였다”고 당시 심정을 전했다.
그러면서 “한 달 정도 직접 고용돼 일을 했는데 회사에서는 저희를 본사 직원이라고 말하지만 내부 분위기는 같은 직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며 “저희를 홀대하거나 거리감 같은 게 느껴지고 근무하는 공간도 기존 직원들과 마주치지 않게 세차장 옆 빈 건물을 개조해 사무실과 휴게실로 사용하게끔 떨어뜨려 놨다”고 씁쓸해 했다.
최씨는 “대법원의 판결로 도로공사 정규 직원임을 인정받고 고용됐지만 막상 출근해서 일을 하다보면 하청업체 직원을 대하는 것 같다”며 “(하청업체 직원한테) 일감을 던져주며 일을 지시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끝으로 “그 동안 (도공 직원들과) 같은 업종에서 일을 해왔는데 그 사람들은 우리를 별개로 생각한다”며 “그쪽(도공)에서는 우리가 뭔가 큰 걸 바라고 있는데 단지 우리는 정규직 사원으로 근무하며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거 외에는 다른 게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요금수납원 신미영(가명)씨는 최씨와는 다른 지사에 근무하고 있다.
그녀는 “한 가지 일만 하는 게 아니다”며 “도로안전팀(고속도로 주변 쓰레기 수거), 교통안전팀(졸음쉼터 청소), 고객지원팀(영업소, 휴계소 인근 청소) 세 가지 업무를 한 달에 한번씩 돌아가면서 맡아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도로안전팀 일을 하다가 1월부터는 교통안전팀에서 졸음쉼터 청소일을 하고 있는데 도로안전팀에서 일 할 때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정말 힘들었다”면서 “도로안전팀에 있을 때는 고속도로 주변 잡목 등을 제거하는 일이다 보니 업무 초창기에는 낫질, 삽질 등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 “하지만 요금수납 업무만 하던 여자들이 낫 같은 도구를 들고 하기에는 위험하기도 하고 다른 지부에서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문제가 되자 지금은 쓰레기를 줍고 분류하는 작업 위주로 일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도로공사 일, 그 중에서도 도로안전팀 일은 여자들이 하기에는 매우 힘들고 위험한 일인데 (고속도로) 가드레일을 청소하다보면 차들이 휙휙 지나가는데 엄청 공포스럽고 무서웠다”며 “(도공에서) 교육할 때 뒤를 돌아봐가며 차오는 방향을 봐가면서 일을 하라고 했는데 차를 신경쓰다보면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또 “도로공사 기존 직원(도로안전팀)들은 남자들인데다 (차가 지나가도) 그러려니하고 일을 한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생소한 일이고 처음엔 쓰레기 줍고 청소만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고속도로 가드레일 주변에서 일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강조했다.
한 달 만에 보직이 바뀌어 도로안전팀에서 졸음쉼터로 옮겨왔지만 처음 접하는 업무여서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A씨는 “고속도로 주변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 뿐만 아니라 일일이 종류별로 분리수거 작업까지 시키다보니 업무량도 많고 온갖 쓰레기가 모이다보니 악취로 인한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어 “쓰레기 수거 업체에서 해야 할일을 우리한테 떠넘기는 거 같다”고 강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심지어 눈에 보이는 쓰레기뿐만 아니라 땅속에 묻혀있는 쓰레기까지 파내서 수거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힘든 업무만큼이나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해야 하는 일도 무척 고달프다”면서 ““저 같은 경우는 경기도에 사는데 강원도로 발령을 받는 바람에 도공에서 마련해준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씁쓸해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B씨 역시 생소한 업무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B씨는 “(요금수납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후 기존 해오던 수납업무와 전혀 다른 생소한 일에 투입되면서 초창기에는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랐다”며 “이렇다보니 일부 직원들이 지사장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등 불만이 잇따르자 요즘은 위험 업무의 경우 강제로 시키는 일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넝쿨을 제거하기도 했는데 바닥이 고르지 않고 울퉁불퉁해서 자칫 잘못하면 사다리가 흔들려서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도 있었다”면서 “업무를 거부하면 (도공에서) 징계를 내리겠다고 협박조로 말하기도 했다”고 도공의 갑질을 폭로했다.
또 “회사에서 시키는 일이라 어쩔 수 없이 하고는 있지만 어떤 때는 업무 지시를 따르다보면 부당노동행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면서 “부당한 업무 지시에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향후 문제를 제기할 생각이다”고 덧붙였다.
평화노무법인 현능섭 노무사는 “산업안전보건법 제5조를 보면 사업주는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한 정보를 근로자에게 제공하고 근로조건의 개선을 통해 적절한 작업환경을 조성하는 등 근로자의 건강장해를 예방하고 산업재해발생의 방지에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 노무사는 이어 “위험한 업무를 부여할 때는 안전교육을 시켜야 한다”면서 “건설업종은 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하게끔 돼 있는데 쓰레기 수거 같은 청소업무의 경우 (안전교육이)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산업안전보건법 상에 안전배려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 “사용자(사업주)가 근로자에게 부담하는 근로계약 (고용계약)상의 의무로서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근로자의 생명, 신체 등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도록 안전배려 의무가 부수적으로 계약내용에 명시 돼 있다”며 “이 의무에 위반해 재해를 입게 한 경우에는 채무불이행책임이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도로공사 관계자는 “수납업무가 없어져 회사 측에서 업무를 발굴했으며 업무를 부여하기 전 4주 동안 직무교육도 실시했고 현장 배치된 분들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안전교육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산재처리 부분은 그 직원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내용을 봐야하겠지만 산재 시 지원도 받고 진단서가 있으면 2주까지 급여도 나온다”고 덧붙였다.
또 원거리 사업장 배치에 대해서는 “전국에 50곳의 사업장이 있는데 한 번에 1000명에 가까운 분들을 배치하다보니 어떤 분은 수도권으로 가고 어떤 분들은 그나마 수도권에서 가까운 강원이나 충청지역 사업소에 순차적으로 배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누구는 가까운 곳으로, 누구는 원거리로 가는 것은 회사 여건상 불가피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도로공사는 순환근무가 원칙이라 신입직원도 첫 입사 후 원거리로 배치되며 2년 주기로 순환근무를 하는 부분 등을 누차 말씀드렸다”며 “회사 고유권한에 대해서도 이해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1000명에 가까운 분들을 배치하다보니 기존 직원들이 사용하던 공간을 내어준 곳도 있어 내부적으로 기존 직원들이 역차별 받고 있다는 등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얘기도 많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