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생태 스토리

[줌人②-농업을 말한다]배용진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회장이 말하는 ‘신재생에너지’

“환경을 환경으로 살려야, 작은 왕국 부탄의 친환경 정책 주목”
“개발의 역기능이 부메랑 되면 행복 해쳐, 국민 행복 우선”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과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친환경 에너지 사업이 오히려 반환경 사업이라는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탈원전 정책의 대안으로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산지대가 많은 경북 지역과 청정해역인 남해와 제주도 등에 집중적으로 풍력발전단지와 태양광 시설이 난립하면서 환경 파괴와 생태계 교란 등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배용진(86) 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회장은 정부가 추진 중인 탈원전을 지지한다면서도 곳곳에서 농어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를 밝혔다. <kjtimes>1970~80년대 농민단체를 결성해 농민운동을 이끌었던 배 전 회장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난기류를 만난 배경과 친환경 에너지 사업의 성공 조건에 대해 들어봤다.<편집자주>

 

[KJtimes=견재수 기자]온실가스(지구 대기를 오염시켜 온실 효과를 일으키는 물질) 배출에 의한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수억년 동안 얼어 있던 남극의 빙하가 녹고, 호주에서는 반년이나 이어진 산불로 남한보다 더 넓은 면적이 잿더미가 되는 등 전 세계 곳곳에서 기상재해가 일어나고 있다.


이 같은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재앙에 막기 위해 21세기 지구 온도 상승을 2이내로 제한하자는 UN기후변화협정이 지난 2015년 체결됐고 이후 신기후체제가 출범했다.


이를 계기로 탄소배출량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저탄소에너지와 신재생에너지가 미래 에너지원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대규모 풍력발전단지가 건설되고 있는 청송, 영양, 봉화 등 경북지역에서는 사업자와 주민들이 수년 째 갈등을 빚으며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 부재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다음은 배용진 전 회장과 일문일답이다.

 

-지난 2011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원자력을 축소하는 탈원전 정책이 가속화되면서 그 대안으로 친환경 재생에너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자연을 이용한 풍력, 태양광 등이 대표적인데 이 같은 현상의 방향성을 진단한다면.


탈원전을 지지 한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독일이 탈원전 정책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바 크다고 본다. 우리와 같은 지리적 여건과 원전 배치를 볼 때 사고가 난다면 궤멸에 가까운 재앙이 닥칠게 뻔한데 탈원전을 반대할 수 있겠나.


원전 사고 발생 당시 후쿠시마의 방파제 높이가 15m이었다. 이 높이를 넘는 해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어느 누구도 예상 못했을 것이다. 그간 경험하지 못한 영화 속에서는 볼법한 자연재해가 현실에서 나타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자연의 원리다.


그래서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오만에서 벗어나 자연의 일원이라는 성찰이 필요하다. 신재생에너지인 풍력, 태양광도 환경 파괴와 생태계 교란으로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안겨주고 있다.



경북 청송의 경우를 보자. 청송의 미래자원은 산이다. 산은 우리에게 부()를 안겨줄 자연의 보고다. 그것이 마구잡이로 파괴되는데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을까. 민간사업은 투자와 이윤의 경영논리로 진행하니 마찰이 생길 수 에 없다. 이러한 문제점들 때문에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되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철저한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얻는 것과 잃는 것을 가려 해당 지역 주민들과 소통해야 한다. 민간사업자들은 환경과 생태계가 망가지던 말든 철저히 사업성만 따지는 경향이 높다. 신재생에너지사업을 국가사업으로 진행해야 하는 이유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본질은 환경을 환경으로 살리자는 것 아닌가. 그 본질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풍력과 태양광의 경우 생태계 교란 등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는 만큼 새로운 원소를 개발해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연구가 절실하다. 이러한 친환경 에너지 사업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전기를 절약하는 의식 전환도 필요하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둘러싸고 인허가 비리와 공사 과정에서 불법과 편법이 자행 되면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사업자와 농어민들 간 고소고발로 법정다툼으로 까지 비하면서 극한 대립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데 관리감독을 해야 할 정부와 지자체가 중재자 역할, 즉 컨트롤타워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이조 500년의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탐관오리가 없지는 않았지만 당시 법이나 감독을 하는 지도자들이 염치란 도덕적 가치를 갖고 있었다. 지금의 선출직 공무원들을 보면 권한을 위임한 국민에게 정말 염치가 없다.


나중은 아랑곳 않고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자신을 뽑아준 주민들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치적 쌓기에 몰두하고 있다. 민간사업으로 에너지사업을 지속하는 한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탈원전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친환경에너지 개발이냐, 자연환경 보존이냐를 놓고 충돌하면서 신재행에너지 사업이 환경 대 환경의 충돌 양상이 되고 있는데 양쪽 모두 환경이라는 정당성을 놓고 대립하는 모양새다.


모든 개발은 역기능이 있기 마련이다. 얻는 것과 손실을 저울대에 얹어서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를 가려야 한다. 여기에 유의 해야 할 일은 손실에서 인간의 지혜로서 재생시킬 가능성 또 얻는 것의 지속 가능성을 놓고 국가적 입장과 국민적 입장을 분석해야 한다. 여기에서 국민 행복을 저해한다면 (개발 사업을) 접어야 한다.

 

-풍력개발 사업으로 경북 영양군, 청송군이 수년 째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나 사업자들은 풍력발전의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하면서 친환경에너지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은 반환경적 사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영양의 경우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돼 가동 중인데 청송은 지역 주민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닥쳐 풍력발전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다른 지역들에 비해 청송 지역의 반발이 거센데.



영양은 풍력이 무엇이고 우리 생활과 어떤 관계인지도 모르는 시대 급진된 것이다. 영양도 지금 뒤 늦게 (풍력의 문제점을) 알고 고민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청송의 경우 영양과 다른 점은 (펑력발전단지가 건설되는) 면봉산이 태산준령(큰 산과 험한 고개)이라는 점도 있지만 풍력의 폐해를 영양의 사례를 통해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쯤해서 (풍력 사업을) 축소해야 한다고 본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보면 자본과 과학문명이 자연을 파괴하고 지배하는 양상이다. 최근 한 지역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화학의 오남용이나 자연 파괴가 인간에게 부메랑이 되어 행복한 삶을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는데 자연과 인간의 공존은 불가능한 것일까.


히말라야 작은 왕국 부탄의 행복지수가 우리 보다 높다. 이 나라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모든 정책의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4만 달러가 되면 행복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탄은 오랜 시간 수력발전 개발 여부를 놓고 (에너지) 대량 생산이 인간에게 미치는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전기가 부족한 이웃나라 인도가 (부탄에 수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해서 수출하라고 졸라도 서두지 않는다. 왜 돈이 필요하지 않아서 일까. 개발의 역기능이 부메랑이 되면 행복을 해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스페셜 인터뷰]‘소통 전도사’ 안만호 “공감하고 소통하라”
[KJtimes=견재수 기자]“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공감과 소통이 어려워진 것이다.(공감과 소통의) 의미가 사라지고 충동만 남게 됐다.” 한국청소년퍼실리테이터협회(KFA: Korea Facilitators Association)를 이끌고 있는 안만호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사회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또 이제 공감능력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비대면 사회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소통 전문가로 통하는 안 대표는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이나 SNS, 유튜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성은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지식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며 “요즘 인간의 탈사회화가 진행되는 것에 비례해 인간성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거리를 두더라도 우리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체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이자 연대라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밝혀졌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