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Jtimes=정소영 기자] 전 세계적인 플라스틱 감축 협상을 앞두고 국내에서 지난 24일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산업계의 생존과 기후 대응이 더 이상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접근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에 시민사회, 정부 부처, 정치권, 그리고 산업계의 의견이 모였다.
오는 8월 제네바에서 개최될 제5차 정부간 협상위원회 속개회의(INC-5.2)에서 1차 플라스틱(폴리머·플라스틱 원료) 생산 감축이 핵심 쟁점으로 논의될 예정인 가운데, 한국 또한 과잉 생산 문제에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차 플라스틱 생산 감축, 국제사회 핵심 쟁점 부상
이학영 국회 부의장, 이재정 의원, 기후솔루션은 이날 '탈플라스틱 시대의 국제외교 및 국내 산업 전환 전략'을 주제로 국회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에는 외교부, 환경부, 기후단체, 산업 협회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석하여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위한 한국 정부의 국제외교 및 산업 전환 과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8월 제네바에서 열리는 INC-5.2 회의가 플라스틱 오염 대응 국제 협약 초안을 조율하는 사실상 마지막 공식 회의라는 것이다. 이 회의에서는 1차 플라스틱 생산 감축이 핵심 쟁점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이미 유럽연합(EU), 태평양 도서국, 케냐, 파나마 등 다수 국가는 감축 목표를 협약에 명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담은 '니스 선언'은 지난 6월 95개국의 지지를 받았다.
◆소극적 국내 논의 지적…'외형만 진보적' 비판도
국제사회는 플라스틱 문제를 기존의 폐기물 관리 중심에서 벗어나, 생산 단계에서의 근본적인 감축으로 논의를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논의는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석유화학 부문은 국내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약 10%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2022년 '고위 공약 연합(HAC)'에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축 목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 '외형만 진보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플라스틱 생산 감축은 단순히 기후위기 대응을 넘어,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구조적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산업 전략으로서도 중요성이 강조됐다. 현재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글로벌 공급 과잉과 경쟁 심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해서는 범용 플라스틱 중심의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기후솔루션 신유정 변호사는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위한 ‘산업 전략’과 ‘외교 전략’의 병행 필요성을 강조했다. 신 변호사는 “외교 전략 차원에서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국제 협상에서 적극 지지함으로써 중국·중동 등 주요 생산국의 신규 설비 확대를 간접적으로 억제할 수 있으며, 산업 전략 차원에서는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생산 구조를 합리화하고 녹색 전환을 본격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플라스틱 오염피해국과 산유국이 모두 있는 복잡한 지역이지만 규범적 리더십은 부재한 상황”이라며 “국내에서 부처 간 긴밀한 협의와 협상 역량을 투입해, 아태 지역에서의 한국이 리더십을 확보하고 국제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 및 산업계, 정부 지원 통한 산업 전환 촉구
패널로 참여한 그린피스 김나라 캠페이너는 “전 세계 재활용률은 9%에 불과해, 쓰레기 처리만으로는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100여 개 국가가 지지하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의 성안과 이행에 참여해야 한다”며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전 세계 4위의 에틸렌 생산 능력을 갖고 있는 주요 생산국으로서, 이러한 협약이 성안될 경우 기업의 변화와 준비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김보연 국제사업팀장은 “유해화학물질은 재활용을 통해 순환되고 있으며, 그 위험은 오히려 더 장기화돼 생산 감축 없이는 본질적 해결이 어렵다”며 “한국 정부는 구속력 있는 감축 정책 및 목표와 이행 전략을 제시하는 주도국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넥스트 김수강 연구원은 “중국과 중동의 대규모 설비 증설로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수출경쟁력이 하락하고 있으며, 플라스틱 내수시장도 인구감소와 소비감축 정책으로 축소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청정·재활용 원료 전환을 위한 시장 기반과 정책 유인이 시급하다”며 “유럽의 ‘청정산업딜’처럼 명확한 전환 계획을 세운 기업에 보조금·대출·세제 혜택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산업계 패널인 한국화학산업협회 김대웅 지속가능경영본부장은 석유화학 산업이 공급과잉과 국제 경쟁 심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에 공감하며 “범용제품 중심에서 벗어나 고기능성 수지, 재활용 원료 기반 소재 등 친환경 고부가 제품으로의 전환을 위해 기업들이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으나, 시장과 제도 기반의 뒷받침 없이는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정부가 저탄소 기술 실증, 설비 전환, 인증 기반 마련 등에서 재정·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산업의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부, 국제 협상 성안 노력 및 국내 정책 조화 강조
정부 부처에서는 전지구적 규모의 협상을 성안 단계로 끌고 가는 것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외교부 박꽃님 녹색환경외교과 과장은 “국제 협약 협상 과정이 미국과 중동국가 등이 생산에 대한 조항이 담기는 것에 반대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는데, 가능한 많은 국가가 동의할 수 있고 의견을 합치할 수 있는 공감대를 넓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협상이 지향하는 방향과 기업이 고민하는 방향이 일치하고 있는 것, 그리고 산업계가 저가범용 플라스틱에 대한 대체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며 “전지구적 규모의 협상이 시작됐고 이것을 성안하는 과정 자체가 정부와 산업에 강한 시그널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경부 이정미 자원순환정책과 과장은 “EU 등 국제사회에서 플라스틱을 포함해 다양한 환경 규제가 제정·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산업계와 어떻게 협력해서 지원하고 준비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INC-5.2 협상에서 다뤄지는 여러 주제와 관련해서도 국제적 논의 흐름과 국내 정책이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듯 여건이 성숙된 만큼, 기존 대책과는 달리 새 정부의 탈플라스틱 로드맵에는 전주기적 관점을 아우르는 내용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좌장을 맡은 부경대학교 법학과 박종원 교수는 “모든 국가가 찬성할 수 있는 '약한 규제'를 만들 것이냐, 100여 개 국가가 원하는 '강한 플라스틱 규제안'을 만들 것이냐가 주요한 쟁점인 상황“이라고 짚으며 “플라스틱 대량 생산국이자 소비국으로서,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기 위해서는 산업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토론회 주최와 축사를 맡은 이학영 부의장은 “문제는 플라스틱 제품이 과잉 생산되고, 또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해서는 불필요하고 대체가능한 플라스틱의 생산과 소비는 줄여 나가는 '탈플라스틱' 정책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플라스틱 생산으로 인한 탄소발자국과 오염 문제를 줄이면서도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지원할 길을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고 덧붙였다.
이재정 의원도 "플라스틱 탄소발자국과 오염 문제의 해결은 우리 앞에 놓인 당면 과제"라며 "이재명 정부는 '탈플라스틱 로드맵' 수립을 공약한 바 있다. 우리 정부가 탈플라스틱이라는 국정 기조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국제사회의 공동 과제 해결에 함께 발맞추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기후솔루션에서 발간한 ‘탈(脫)플라스틱 외교 및 경제 전략: 글로벌 플라스틱 생산 감축과 국내 산업 전환 지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1차 플라스틱 생산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9년 기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5.3%를 차지하며, 이 수치가 2050년까지 세 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 또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세계적인 공급과잉과 경쟁 심화로 구조적 침체에 직면해 있으며, 범용 플라스틱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혁신해야 지속가능한 생존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날 기후솔루션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1차 플라스틱 생산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9년 기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5.3%를 차지하며, 이 수치가 2050년까지 세 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전 지구적 감축 목표 설정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갖고 협약의 규범 설계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제안하며, 동시에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녹색 전환을 위한 재정 투자를 확대하고 배출권 유상할당 확대로 그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