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김지아 기자] "코로나19가 끝나면 회사를 1년간 쉬고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을 갈 계획이다. 집은 전세를 주고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식구 4명이 각각 가고 싶었던 나라를 하나씩 정해서 가볼 생각이다" - 용인거주, 50대 대기업 부장 최씨
"코로나로 가족 모두 많이 아팠다. 아프면서 새삼스럽게 우리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더이상 미루지 않고 경치좋은 곳으로 여행을 다닐 계획이다. 캠핑카를 알아보고 있다. 아이들도 저마다 여행준비에 설레는 중이다" - 서울 거주, 48세 대학교 재학중인 교수
"낮에는 직장을 다니고, 밤에는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병들고 아프니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닳았다. 지금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가장 행복하게 사는 게 최고다." -경기도 거주 30대 직장인
코로나 전염으로 전세계가 팬데믹에 빠졌다. 금방 끝날것 같았던 대유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매일 7만명에서 10만명의 신규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사망자도 지속적으로 증가추세다.
'전염병'에 생소했던 대한민국의 많은 직장인들이 다니던 회사에서 집으로 서류와 노트북을 가져왔고, 장기간의 재택근무를 했다. 온라인으로 회의를 하고, 인트라넷을 통해 서류에 사인을 하면서 '낯설고 생소하지만 또다른 근무시간'을 보냈다.
특히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 등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생활을 하면서, 일보다 건강과 행복을 더 중시하는 쪽으로 가치관이 크게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새삼스럽게 느끼고 본 것들이 작게 크게 영향을 준 탓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가족간의 단절, 소통의 부재 등의 문제로 고민했던 현대인들이 전염병이라는 눈앞의 과제를 풀어내는 시간이 길었다. 자가격리, 재택근무 등의 어쩔수 없이 가족과 어울리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며 "이런 시간들이 긍정적으로는 현대인들에게 일보다 가족, 건강이 우선 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례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는 최근 '2022 업무 트렌드 지표'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결과가 이같은 추세를 반영해주고 있어 인상적이다. 올해로 두 번째 공개된 이 연간 보고서는 전 세계 직장인에 대한 설문조사와 MS의 기업용 소프트웨어 '마이크로소프트 365'의 이용 패턴에서 포착된 특징, 구인·구직용 소셜미디어 링크트인의 노동 시장 동향 등을 토대로 MS의 전문가들이 분석한 결과다.
올해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일본, 홍콩, 호주, 브라질, 멕시코 등 31개국에서 직장인 3만1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 결과, 직장인의 53%가 팬데믹 전과 비교해 "일보다 건강과 행복을 더 우선시하게 됐다"고 답했다. 또 47%는 "가족과 개인적 삶을 더 중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MS측은 이에 대해 "응답자 18%는 실제 최근 12개월 사이 일을 그만뒀는데 그 이유로 일과 생활의 균형(워라밸), 행복, 유연성을 들었다. 급여는 이유에 없었다"며 "세계적으로 직장인이 일의 가치, 그리고 일의 대가로 무엇을 포기할 것인 지를 놓고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의 판단을 재정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다른 전문가는 이같은 추세를 두고 "지난 2020년 3월부터 재택근무 모드로 들어간 많은 사람들은 2022년 현재 전혀 다른 생각을 갖게 됐고, 이런 마음으로 회사를 복귀한 경우가 많다"며 "2년 가까운 재택근무의 집단체험 뒤 거기에 적응했고, 재택근무에 장점과 혜택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됐을 것이다"고 말했다.
정신의학과 한 전문의는 "가치 체계나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바뀌었다. 많은 직장인에게 '유연성'이 타협할 수 없는 일이 됐으며 회사도 이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며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재택근무 또는 하이브리드 근무로 옮기는 걸 고려하겠다는 직장인이 과반수가 넘는다. 많은 직장인들이 일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었다"고 분석했다.
특히 MS사의 보고서에 따른 재택·하이브리드 근무 선호도를 보면, 한국은 43%, 일본은 31%였다. 프랑스(34%), 독일(35%), 영국(43%), 호주(47%), 캐나다(48%) 등도 평균치 이했다. 반면 브라질(58%), 중국(59%), 인도(67%)에선 전 세계 평균보다 재택·하이브리드 근무 선호도가 더 높았다.
여행·휴식·레저를 "일보다 가족이 먼저" 캠핑카 조회수도 증가
최근 한 인터넷 지역카페에서 '코로나19가 끝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을 조사했더니 1위가 해외여행이었다. 2위는 호텔 및 콘도 패키지를 통한 휴식, 3위는 캠핑으로 국내여행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돈을 모았는데, 코로나19에 조금 불안한 마음이 크다. 가족끼리 캠핑카를 구입해 국내여행을 다니기로 했다. 안전하고 마음편하게 우리나라 곳곳을 둘러볼 생각이다." 직장인 최씨는 최근 캠핑가 전시회 등 구체적으로 가족들과 함께 여행준비에 나섰다.
"캠핑가도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앞으로 5년정도 여행을 다니면서 쓸 경비를 계산해보면 숙박비로 들어갈 금액으로 캠핑카를 사는게 더 경제적이란 결론을 내렸다"는 그는 "가족과함께 캠핑 관련 행사들을 찾아다니면서 정보를 얻고 있다고 전했다.
휴식을 통한 가족간의 단합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연년생 사춘기 남매를 둔 대학교수 이모씨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사춘기의 아들딸과 함께 시간을 더 많이 보낼수 있게 됐다. 직장에 다닐땐 주말에 얼굴 두어번 보는 게 다였는데, 재택근무를 하니 적어도 하루 한번은 함께 밥을 먹게 된다. 아들과는 자연스럽게 함께 텔레비전 등을 통해 스포츠를 보면서 친해졌고, 사춘기 딸아이와는 맛있는 저녁메뉴를 고민하면서 소통을 시작했다. 딸아이의 뒷모습만 보던 예전에 비하면 얼굴을 마주하고 웃을수 있을 만큼 친해진 지금이 너무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전문가들은 "핵가족과 모바일 등의 발전으로 개인주의적인 현대사회의 슬픈 단면들이 코로나19를 통해 어쩌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고, 소통할수 있는 시간이 마련됐을수 있다"면서 "코로나19 이후 가출소년이나 비행청소년이 줄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부모 자녀간의 친밀도가 형성될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코로나19가 처음 시작됐을 때 잦은 우울증 등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2-3년간 지속되는 팬데믹 상황이 이어지면서 우울증을 호소하던 사람들이 줄어들고, 오히려 '가족문제' 등을 상담하러 오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가족간의 대면기간이 길어지고 자주 부딪히게 되면서 소통하고 회복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증가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가족간의 친밀한 대화와 솔직한 표현, 스킨쉽 등을 통한 기본적인 유대관계를 형성시켜 나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부부간, 형제간의 소통과 화해의 대화법도 최근 많이 효과를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문화생활이나 이벤트도 가족단위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국의 지자체 행사들의 경우 가족단위, 지역 마을 단위로 진행돼 이같은 변화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