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견재수 기자] 최근 서울 송파세무서(서장 최진복)에서 근무하던 직원A씨가 세우관(세무공무원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달 24일 제주도에서 연수 중인 교육생 B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지 불과 2주 만이다.
숨진 A씨는 지난해 5월 첫 발령을 받아 국세청 업무를 시작한 지 1년이 갓 지난 9급 세무공무원으로, 아침에 출근하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긴 동료가 직원 숙소에서 발견했다.
A씨의 마지막 출근지는 송파세무서 체납징세과였다. 얼마 전 이곳 전산실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책임 소재를 놓고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갔다고 한다. 어떤 말이든 9급 직원이 감당하기 힘든 것이 아니었길 바란다. 그렇다고 해도 꽃다운 9급 세무공무원의 시계가 송파세무서에서 멈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직원의 극단적 선택, '부고'가 불편한 국세청
A씨의 극단적 선택에 이런저런 의문이 생겨 취재를 시작했다. 이미 직원들 입단속이 시작된 듯 보였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도 역력했다. A씨의 직속상관인 체납징세과장은 전산실 화재와 관련된 얘기만 답을 할뿐, A씨에 대한 질의를 하자 말을 아꼈다.
부서장으로서 어제까지 함께 일했던 동료 직원의 죽음에 어떤 마음인지 묻고 싶었으나 더 묻지 않았다. 그가 답할 수 있는 영역은 조직이 허락하는 범주에 국한돼 있어 보인 이유에서다.
최진복 송파세무서장은 빈소를 차린 직후부터 발인 당일까지 고인을 조문했다고 한다. 국세청이 사건 발생 후 '부고'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쉬쉬"하는 이유를 그에게 물었다.
최 서장은 "A씨가 국세청 입사 후 지난해 5월 발령 받은 초임지가 송파세무서였고, 다른 곳에서 근무한 이력이 없어 아는 직원들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그의 말대로면 A씨는 국세청 내에 친구도 동기도 전혀 없는 인물이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국세청은 경조사를 전파하는 속도가 가장 빠른 공무원 조직 중 하나다. 국세청에 대한 취재 짬밥(?)이 쌓이면서 가장 먼저 체감하게 된 사실이다.
A씨와 비슷한 사례로 보이는 사건을 기억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지난 2020년 말쯤 서울 강동세무서 소득팀 직원 C씨는 일요일에도 세무서로 출근해 동료들과 대강당에서 사업장 현황 신고 창구를 만드는 업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창문 틈으로 몸을 던져 삶을 마감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함께 있던 동료들조차 손쓸 틈이 없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서울 종로세무서 체납징세과에 근무하던 여직원 D씨도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D씨는 밝고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격무에 시달리며 여러 차례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했다는 얘기가 세정가에 돌았다.
최근에는 국세청 인트라망에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글은 <내가 죽어야 끝날까>라는 제목으로 시작해 '모두들 안녕'이란 말로 끝을 맺었다.
다행히 우려했던 사고는 막았지만 만에 하나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국세청의 연말은 더 뒤숭숭한 분위기 아니었을까 싶다.
국세청 직원으로 근무하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사례 가운데 D씨를 제외한 A씨, C씨, 그리고 교육생 B씨는 사내 경조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평상시 직원들의 경조사를 내부전산망에 신속히 올리는 국세청 관례에 비춰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지난해 종로세무서 직원 D씨의 안타까운 사건을 세상에 알리자 국세청 고위 관계자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온 기억이 새삼스럽다. 구구절절 나열하지 않겠다. 슬픔을 함께 나눠야할 동료 직원의 '부고'를 상황에 따라 불편해 하는 곳이 바로 국세청이라는 기억만큼은 생생하다.
김창기 국세청장은 취임 일성에서 "2030 세대가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국세청 수장이 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되묻고 싶다. 어쩌면 이들이 김 청장에게 절실했던 건 조직의 수장보다 따뜻한 심장 역할을 해주길 바랐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정가 이구동성 '상사의 갑질', '근평', '상대적 박탈감'이 가장 큰 문제
그러면 국세청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길래 앞길이 구만리 같은 9급 직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세정가에서는 이들의 안타까운 선택 이면에 몇몇 '상사의 갑질'을 꼽고 있다. 그래서 송파세무서에서 삶을 마감한 A씨, 강동세무서의 C씨와 종로세무서의 D씨도 이런 시각에서 분명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상사의 갑질이 '갑론을박' 대상이 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승진을 앞둔 상사와 근무해야 하는 직원들이 피부로 느끼는 것은 더욱 강했다. 그만큼 만연돼 있다는 방증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상황에서 휴일까지 불려 나와 격무에 시달린 C씨, 힘들 만큼 무리한 업무로 주변인들에게 힘들다는 하소연을 자주 했다는 D씨도 사건의 본질은 직장 내 갑질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지, 국세청은 제 2‧ 제3의 안타까운 선택을 막기 위해서라도 되짚어 봐야 한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갑질을 하는 상사들의 든든한 무기 역할을 할까?
바로 '근평(근무평가)'이다. 부하직원들을 좌지우지할 뿐만 아니라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하위직(7~9급)으로 일컬어지는 직원들은 상사의 근평 점수에 매우 민감해 하고 일부 직원은 상대적 박탈감까지 호소하고 있다. 실제 국세청 내에서 근평은 승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세무공무원 9급에서 8급 승진에 필요한 기간은 6년이었다. 그러다가 1년 6개월에서 3년 사이로 바뀌는 추세였지만, 올해 김창기 청장이 사령탑을 맡으면서 승진 연한은 또다시 길어지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승진에 필요한 기간이 길어질수록 상사의 근평에 더욱 매달리고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상사의 근평에 공정성 시비를 거는 직원들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남자 직원들의 불만은 매우 높은 편이다. 젠더 갈등을 아젠다로 꺼내면 내용도 길어지고 논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젠더 논쟁이 아닌 국세청의 현실에 대한 지적 정도로 봐줬으면 좋겠다. 최근에 갑자기 화두가 된 것도 아니며, 국세청을 취재할 때마다 여러 해전부터 접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게다가 국세청 조직이 놓인 작금의 상황에선 수면 위로 올린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이미 논의됐어야 하고 고민이 필요했던 문제다.
그것은 바로 근평 적용에 있어 남직원과 여직원의 잣대가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남직원들보다 여직원들이 상대적으로 힘든 보직, 또는 빛이 잘 나지 않은 업무를 맡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평은 여직원들이 우위를 점하는 경우가 많고 이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남직원들이 많다고 호소하고 있다. <기자>가 국세청을 취재하면서 체감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제 서울 한 세무서의 경우 상사의 근평을 잘 받기 위해 상납을 하다 감찰에 포착돼 지방으로 좌천되는 사례도 있었다. 상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다 사회적인 문제로 확대되기도 했다.
근평 1순위였던 남직원이 어느 순간 여직원보다 아래인 후순위로 밀려나 승진에서 미끄러진 사례도 제보되고 있다. 근평을 쥐고 있는 상사들 가운데, 여직원들이 민원을 제기할까 신경이 쓰여 후한 점수를 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공공연하게 들린다. 이런 경우는 상사들 입장에서도 애로사항인 셈이 된다.
얼마 전부터는 국세청 내에서 맺어진 사내커플의 힘까지 작용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예를 들어 부부 중 한 사람이 서기관이나 사무관급인 경우 이런 저런 방식으로 다른 배우자를 승진시키는 사례들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내부 관계자는 "열심히 일하고 사명감이 강한 친구들이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백 있고 배우자를 잘 둔 직원들이 승진하는 것을 보면 조직 시스템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귀띔했다.
3년 전 '극한직업'이라는 영화가 개봉됐다. 영화에서 형사들이 범인 검거를 위해 치킨가게를 운영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코미디 영화다. 얼마 전 국세청 내에서 9급 남직원을 '극한직업'에 비유한다는 웃픈 애길 들었다. 8급이나 7급도 큰 차이는 없다고 한다. 이들의 현실은 하루하루가 극한직업의 연속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