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주택 1139채 보유한 임대업자 김모씨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빌라왕' 사건이 수면 위로 올랐다. 한 명이 1000채 넘는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부터 40대 초반인 그가 모텔에서 급작스럽게 숨졌다는 것 등은 차치하고서라도 수백 명에 달하는 임차인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는 현실은 비단 남의 일 만은 아닐 수도 있다. 죽은 빌라왕 김모씨의 사건이 불거지자, 수도권에서만 빌라를 1000채 정도 가진 사람만 4명, 300채 이상은 16명에 이른다는 보도가 나왔고, 이는 추후 더 많은 피해자들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급증시켰다. 이에 지금도 깊은 한숨으로 잠 못 이룰 빌라왕 세입자들과 앞으로도 있을지 모를 제2, 제3의 빌라왕 피해자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전세사기 수법부터 정부대책에 이르기까지 <KJTimes>가 꼼꼼하게 짚어보기로 한다.<편집자 주>
[KJtimes=신현희 기자] 빌라나 주택을 가진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주택 사기 사건 때문에 마음이 불안하다. 우리 집도 이 사건에 연루된 것이 아닌지, 걱정이 태산이다. 세입자들에게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임대보증금 보증보험'인데, 이 또한 제대로 가입이 되었는지 다시 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임대보증금 보증보험은 임대 사업자가 파산 등의 사유로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할 경우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책임지는 상품이다. 보증료는 집주인 즉 임대 사업자가 75%, 세입자(임차인)가 25%를 나눠서 내는 구조다.
보증료는 집주인이 먼저 납부한 뒤 세입자에게 청구하는 방식이므로 만일 집주인이 보증료 25%를 청구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제대로 가입됐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 정부의 미봉책과 임차인들의 요구 상충
최근 빌라왕 김씨에 이어 인천 미추홀구 등에 빌라와 오피스텔 수십 채를 보유한 '20대 빌라왕'으로 불리던 송씨가 숨졌다. 송씨 보유 주택 중 HUG 전세 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된 주택은 46채다., 임차인이 돌려받아야 할 금액만도 약 57억5000만원에 달한다.
이외에도 주택 240여 채를 사들여 세를 놓다가 지난해 7월 30일 사망한 정씨의 세입자들도 아직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씨, 송씨, 정씨 등 지금까지 사망이 확인된 빌라왕만 3명이다.
문제는 'HUG의 재정건전성' 악화다. 오는 2024년에는 법정 한도를 초과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자 세입자들의 피해와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면서 업계와 세간에서 '빙산의 일각'이나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말까지 나돌자 정부도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다.
국토교통부와 HUG 등은 지난 12월22일 피해임차인을 대상으로 전세사기 지원방안 설명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진전된 사항은 없다는 게 피해자 측의 전언이다.
이후 12월30일 전세사기 피해를 예방하고 피해자를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전세사기 전담 대응 조직'(TF)을 구성·운영했다. 그러나 당장 집을 잃게 된 피해자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 같은 우려 속에 현재 피해 임차인들은 ▲정부 태스크포스(TF)팀과 피해자 대표단 간 핫라인 개설 ▲악성 경제사범에 대한 검찰의 신속하고 정확한 조사 ▲임차인에게 악성 임대인 보유 주택의 공지 의무화 법안 ▲주택 매입 사전 심의 강화 ▲피해자 전세자금 대출 연장 등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 세입자가 집주인 동의 없이 세금 체납 확인 가능해져
정부는 악성 임대인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전세 사기 단속 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전세대출 만기를 연장하고 전세 사기 피해 지원 센터를 통해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위한 법률 상담과 임시 거처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HUG 등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에게는 주택도시기금에서 1억6000만원까지 연 1%대 저리로 긴급자금 대출을 지원하기로 했다.
빌라왕 사건 이후 가장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국세징수법 개정안을 통해 오는 4월1일부터 집주인의 동의 없이 세입자가 임대인이 세금을 체납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을 꼽을 수 있다.
이번 개정안은 집주인이 체납한 세금 때문에 세입자가 보증금을 떼이는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는 전세 계약 이전에 집주인의 동의를 받아야만 세입자가 집주인의 세금 체납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법안에도 맹점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집주인의 동의는 받지 않아도 되지만 전세 계약이 체결된 이후 세입자가 집주인의 체납액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게 그것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이러한 정부 대책이 근본적인 전세 사기를 막지는 못한다"면서 "계약서 상 특약사항으로 '계약 체결 이후 체납이 확인되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등을 넣는 것이 피해를 막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부동산 업계에서는 21대 국회 이후 세입자 보호를 위한 법안은 15건 이상 올라가 있지만, 법안 심사는 지지부진한 상태라는 것을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또 다른 부동산업계 전문가는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세입자 보호를 위한 법안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주택도시기금법, 국세징수법, 공인중개사법, 형법 등 여러 법안을 개정해 피해를 막겠다는 취지"라며 "하지만 늘 그렇듯 상임위원회에서 논의를 시작한 법안은 단 두 건에 그쳤고,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0건"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는 이어 "이미 사건은 터질대로 터지고 서민들이 피눈물을 흘리자 이제야 정부는 허둥지둥 나서고 있다"면서 "허점으로 얼룩진 법의 틀에서 사기꾼들이 뛰어놀게 했다면 정부는 지금이라도 그들을 엄중히 처벌하고 진정성 있게 피해자들을 구제해야 할 것"이라고 강변했다.
<다음 편에는 '끝나지 않은 주택 사기, 배후세력 있나‘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