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정혜전 칼럼리스트]오지랖이 넓은 것인지 사사건건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욕구가 강한 것인지 상대는 알고 싶지 않은 것도 부지런을 떨 듯이 하면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움이나 자문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고맙고 필요한 사람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감정을 상하게 만들어 거리감을 두고 싶어지게 만든다. 얼굴을 보고 가르치려 하는 경우는 말을 하는 사람의 표정을 볼 수 있기에 진심으로 도움을 주려 하는지 아닌지 감정 전달을 받아 오해를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카카오톡(카톡)이나 이메일은 말을 하는 사람의 표정을 볼 수 없기에 잘못 전달되어 오히려 좋은 의도가 오해의 골을 깊게 만들어 버리게 할 수도 있다. A씨는 사회생활 경력은 많으나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해 다른 분야의 일을 하는 회사에 들어갔다. 다른 분야이지만 기존에 했던 일들과 연관되는 일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의욕을 가지고 일을 시작해 보려 했다. 첫날 그 회사에서 몇 년 근무한 B씨를 보게 되었고 자신만만함을 떠나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이나 대표가 해야 하는 말을 하는 그를 보며 첫인상이 썩 좋게 다가오지 않았다. 자신보다 나이도 한참 어린 B씨에게 맘이 상한 A씨
[KJtimes=정혜전 칼럼리스트]남의 일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사람이 있다. 업무적으로도 사소한 것까지 알려 하는 사람은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능률저하를 시키고 거리감을 두고 싶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하물며 사적인 것까지 알려 든다면 불편함을 떠나 불쾌감을 조장해 ‘기피대상 1호’로 낙인을 찍어버리게 된다. 어떤 회사의 C팀장은 직원들이 영업차 나갔다 왔는지 확인이 안 된다며 만나는 사람 명함이나 회사 사진을 찍어 전송하라 해서 직원들의 반발을 샀다. 반발뿐이 아닌 좋은 인재들이 회사를 떠나가게 만들어 버리기까지 했다. 아무리 업무적 보고형식이라고 하나 이런 상황은 스트레스를 떠나 악감정 유발이 되는 원인이 된다. 팀원 관리 차원이라고 하지만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D대표는 직원들의 사소한 것까지 아주 관심이 많아 보이는 사람이다. 직원들이 외근해 돌아오면 누굴 만나 무엇을 먹었는지부터 집안사람들에 대해서나 상황에 대해 꼬치꼬치 묻듯 해서 직원들의 신경이 날카롭게 만들어 버린다. 대표가 차 한 잔 하자고 하면 ‘뭘 물어보려 그러나’ 하는 앞선 걱정에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 되고
[KJtimes=정혜전 칼럼리스트]자신의 과거 무용담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늘 같은 무용담을 입에 달고 다니듯 한다면 대단한 사람이 아닌 대단했던 사람, 현재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인상을 남기게 된다. 자신에게 좋은 말을 하는 것도 매번 리바이벌식으로 한다면 진실성이 없어 보이고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되어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한다. 하물며 늘 같은 남의 무용담을 들을 때마다 즐거워 해 주거나 리액션을 하기란 여간 인내의 한계성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무용담을 말하는 것은 그나마 낫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부모님이나 선조대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대단한 가족사인 것처럼 포장을 하려 드는 듯하기도 한다.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의아한 생각이 든다 해도 한번은 즐겁게 대단하다는 맞장구를 치며 들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매번 반복이 된다면 대화 의 브레이크를 걸 수밖에 없기도 하다. 상대의 늘 같은 말을 처음 듣는 듯 경청을 잘 해주며 맞장구를 쳐 주는 사람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이런 인내심이나 경청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이다
[KJtimes=정혜전 칼럼리스트]잘 나가고 자신보다 나은 부류들과 어우러져 살고 싶은 것은 많은 이들의 희망이다.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 말고 수준에 맞게 살아 가는 게 순리라는 사람도 있다. 변화 없이 한 우물만 파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인 경우도 있다. 시시각각 변화하고 100세를 바라보는 시대에 살고 있는 현재에 이런 사고가 안전한 것일까. 못 올라갈 사람들을 바라보며 상처를 받기도 해 같은 수준끼리 살아야 한다는 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시도해 보지도 않고 내 수준은 이렇다고 단정 짓고 인생을 바꾸려 들지 않는 것은 자신만 손해를 보게 만드는 것이다. 요즘 속담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웃었지만 공감을 했다.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 않는다’는 말은 위를 바라보지 말고 자신의 수준에 맞게 살란 뜻이다. 그런데 요즘 시대 성공인들은 사다리를 만들어 올라가 보고 잘 나가는 조폭들은 아예 베어 버린다고 한다. 위에 뭐가 있는지 확인해 보는 시도가 전진해 나가는 길이고 자신이 못 올라갈 나무는 아예 베어 버려 신경 거슬릴 일을 없애 버린다는 것이다. 듣고 웃었지만 공감 되지 않는가. 옛날 부모님들은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고 살아라’
[KJtimes=정혜전 칼럼리스트]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다. 부모님 입장에선 자신이 낳은 자식이기에 무한대로 베풀게 된다.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형제간에는 피를 나눈 사이라 하지만 성향에 따라 자신이 해준 것에 돌아오는 것이 없다면 형제난을 일으키기도 한다. 뉴스를 통한 재벌가들의 형제난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아니라 욕은 하지만 자신도 그 입장이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는 게 인간사다. 돌아오는 것을 바라지 않고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이승에서 덕을 쌓으려는 듯 말이다. 그런데 사람인지라 상대가 고마워하거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 하려 들지 않으면 베품을 중단을 하게 된다. 아주 극소수이긴 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사는 듯 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이런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갖게 만든다면 좋은 인맥을 놓치는 일생일대의 큰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이 계속 자신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도록 관리를 해야 한다. 주변을 잘 챙기는 사람에게 ‘호구’라는 별칭을 붙여 주기도 하는데 이런 별칭을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주 간혹 즐기는 사람도 보기는 하지만 아주 극소수이다. ‘호구’의 별칭을 듣는 입
[KJtimes=정혜전 칼럼리스트]아무리 좋은 언행도 상대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이 상이할 수 있다. 생각이나 성향이 다르니 같은 사물이나 상대의 언행을 보며 느끼는 차가 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을 대하는 기술이 뛰어나 누구나 자신을 좋아한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른 언행을 하며 상대와 맞추어 주어 인간관계를 잘 이끌어 가는 큰 장점을 가진 사람이다. 이런 경우는 적보다는 동지가 많은 게 사실이다. 물론 이런 사람 중에도 적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의 스타일대로 사람들을 대하는 사람들 보다는 적의 수가 눈에 띄게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누구나 자신을 좋아하며 끈끈한 인맥을 만들어 간다고 자신하는 사람 중에 자신의 생각만인 사람도 있다. 자신은 그렇게 자신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저 잘 아는 관계라 생각하거나 상대는 오히려 자신이 맞추어 주어 관계를 맺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자신이 처신을 잘 하거나 인간관계를 잘 이끌어 간다는 자 랑을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장점이 아닌 단점으로 추락해 버리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상대와 사고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배제하지…
[KJtimes=정혜전 칼럼리스트]“일은 빨리 하는데 항상 뭘 하나 빼 먹는다니까요”, “무지 잘 먹는 게 복스러워 보이긴 한데 못 먹고 살았나 봐요”, “퉁퉁하니 부잣집 마나님 같아요” 칭찬인지 상대에게 감정이 있어 무안을 주려는지 이런 말들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을 안 하고 이야기 하는 것인지 생각을 하고 일부러 말을 하는 것인지 상대는 속마음을 읽으려 하게 된다. 생각을 하고 말을 하든 아무 생각 없이 말을 하든 듣는 당사자는 즐거울 수가 없다. 일을 신속히 잘 처리하지만 늘 하나씩 빠뜨려 자신의 단점이라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사람인 경우, 먹는 거 앞에서는 자제가 안 돼 허겁지겁 먹는 듯 하는 자신의 모습이 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 살이 갑자기 쪄서 고민을 하는 경우라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다. 말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그리 큰 문제일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당사자 자신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라면 가볍게 듣고 넘길 수가 없게 된다. 자신의 치부라 생각되는 부분들에 대해 누군가 이야기를 하고 그 말들이 돌게 된다면 당사자는 상처뿐이 아닌 목숨까지 거는 일까지로도 번지게 되기도
[KJtimes=정혜전 칼럼리스트]절이 싫으면 스님이 떠나야지 절을 옮길 수는 없다. 회사가 싫거나 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 싫다면 자신이 떠날 수밖에 없다. ‘싫다 싫다’ 외쳐보았자 스트레스만 쌓이게 된다. 피가 섞인 자식도 내 맘대로 바꾸기가 힘든데 하물며 다른 환경에서 살아오고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을 내 맘대로 바꿀 수는 있을까. “우리 부장은 너무 꼼꼼해서 줄 맞춤까지 신경 쓰고 나무란다니까”라고 푸념하며 스트레스를 받아보았자 부장은 바뀌지 않는다. 늘 같은 걸로 꾸지람을 듣는 자신만 손해인 것이다. 부장의 성격이 그렇다면 똑같은 일로 싫은 소리 듣지 않게 맞추어 주는 것이 상대에게 끌려가지 않는 방법이다. 부서를 바꿀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부부간에도 늘 같은 것으로 싸우며 상대가 변하지 않는다고 원망만 늘어놓아 적과의 동침을 만들어 버린다. 한쪽이 자신의 성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감정싸움은 끝나지 않게 된다. 자신만 힘든 것이 아닌 상대도 힘겨워 서로가 힘든 생활을 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사람 싫은 것만큼 힘든 게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힘든 것만을 생각하며 상대에게 변화를 강요하기
[KJtimes=정혜전 칼럼리스트]사람으로 인한 상처를 늘 받고 산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에게 된통 당한 경험으로 사람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된 경우도 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지례 놀란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람 관계로 이루어지는 사회 속에 살면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동반하기도 한다. 심해지면 사람 관계에 위축감이 생겨 버리기도 한다. 특히 사람 관계로 일을 하는 직업을 갖은 사람은 사회생활이라는 것에 회의감마저 갖게 되기도 한다. 능률 저하뿐이 아닌 사회 적응력 상실로까지 발전하기도 한다. 자신의 상처는 누군가 말끔히 치유 시켜 줄 수 없다. 가슴에 남은 상처는 스스로 치유 능력을 키워 나가는 방법이 최선이다. 물론 좋은 사람들을 만나 치유해 나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의존적 치유는 다른 상처를 물리칠 수 있는 강한 치유법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타인의 작은 말에도 깊게 생각하지는 않는가. 그저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도 ‘왜 저렇게 내게 말을 하지’, ‘내게 감정이 있나’는 깊은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 가슴에 상처를 남기는 사람이 있다. 상대는 아무 뜻 없이 한 말일수도 있다
[KJtimes=정혜전 칼럼리스트]사람을 많이 아는 사람보다 처신을 잘하는 사람이 관계유지나 좋은 인맥들을 많이 구축해 나가게 된다. 처신을 잘 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중심적이라기보다 타인들과 동화되며 배려심을 보이기도 한다. 타인들의 마음이나 상황을 잘 파악하고 대해주는 마음 씀씀이에 감동을 받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사람과 가까이 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없다. 처신을 잘 하는 사람들은 만나면 기분 좋은 사람의 인상을 강하게 남긴다. 자신을 가꾸는 Make-up도 필수이지만 주변 사람들의 경조사에 빠지지 않고 Make-up해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도 필수이다. 자신의 경조사에는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연락을 하면서 자신은 친하지 않은 사람들의 일에는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자신이 부지런히 얼굴 도장을 찍은 것은 자신의 일에도 얼굴 도장 찍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게 하는 힘을 발휘하게 된다. 사람이 모이게 하는 큰 원동력이 된다. 자신과 똑같은 사고를 가진 사람들과만 만날 수는 없다. 피를 나눈 형제, 자식 사이에도 다른 사고를 가지고 있다. 쌍둥이도 사고가 다르다고 하지 않는가. 하물며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 중에 자신과 같은
[KJtimes=정혜전 칼럼리스트]자신의 감정을 잘 컨트롤 하는 사람들은 사람관계도 무난하게 잘 이끌어 간다. 자신의 감정 컨트롤을 못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감정은 없지만 자신의 감정 컨트롤이 안 된 것 때문에 오해를 사게 되거나 심하면 악감정이 쌓이게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그날의 기분대로 매번 달라지는 성격을 맞추어주 며 만날 사람은 없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개인적인 감정사를 남에게 전파해서는 안 된다. 상대의 성향에 따라 한두 번 받아주는 경우도 있지만 오래 안 사람이 아니면 한 번도 받아주기 힘들어지게 된다. 자신의 개인적 스트레스를 업무에 연관시켜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가 가중 된 듯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노처녀 히스테리’, ‘노총각 히스테리’등의 닉네임을 붙이기도 한다. ‘과장님 오늘 기분이 안 좋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부서 내 경직된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자신의 기분에 따라 업무에 적용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공과 사는 구별해야지만 사람인지라 힘들 때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업무 스킬이 향상되는 것처럼 자신의 감정 컨트롤도 연습을 통해 만들어 갈 수 있다. 남의 눈치 안 보고 윗자리에서만 일을
[KJtimes=정혜전 칼럼리스트]멀고 힘든 길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 힘들고 멀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된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좋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좋은 기분을 만끽하지 못하게 되는 것 또한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을 한번 알면 오랫동안 관계 유지를 해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친하게 지내다가도 언제 알았던 사람이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도 있다. 성격의 기폭이 심하거나 자신의 기분대로 사람들을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인 경우가 그렇다. 안지 얼마 안 된 사람들에게 나온 평판보다는 오래 안 사람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평판이 더 신뢰감을 주는 건 사실이다. 주변 사람들과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사람 관계 처신을 보게 된다. 순간순간 그 사람이 필요할 때만 찾는 P가 있다. 자신이 필요할 때는 사람들이 와 주어야 하고 사람들이 자신이 필요할 때는 자신에게 필요한 자리가 아니라면 핑계거리를 대고 늘 거절을 하는 사람이다. 상대도 자신이 필요한 자리가 아니거나 일이 생겨 못나가게 될 수도 있는데 P는 그런 것을 용납 못하는 듯 상대를 대하기도 한다. “다음엔 다신 연락을 안 하겠다”, “나와 좋은 인맥은 아니었
[KJtimes=정혜전 칼럼리스트]주면 되돌아오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철칙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되돌아오는 것이 없으면 바로 관계 청산을 하려는 사람, 조금 더 두고 본 다는 식으로 거리감을 두며 관계유지를 해 나가는 사람, 되돌아오는 것이 있어야 한다며 빚쟁이 식으로 상대를 대하는 사람 등의 스타일이 있다. 바로 관계 청산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물도 칼로 자르려는 듯 도전적으로 사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자신은 베풀거나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는 크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고 고맙다고 생각을 하지만 다른 것으로 보답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저 사람에겐 무언가 주거나 베풀 의미가 없다’는 생각으로 섣불리 관계청산에 들어가는 것은 좋은 사람, 내게 끈끈한 인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사람을 놓치는 실수를 자행하는 원인이 된다.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중점을 두는 것은 일이든 인간관계든 멀리 보지 못 하게 만드는 잘못된 사고이다. 현재 상황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사람들을 평가해 더 큰 것이 돌아올지 모르는 것을 스스로 차버리는 현상을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바로 돌아오는 것은 없지만 상대의 인간성을 두고 본다는 식으로 관망하며 거리감을…
[KJtimes=정혜전 칼럼리스트]심한 배신감이나 치욕스러움을 주는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려 드는 사람은 없다. 수양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살면서 이런 일 들은 작든 크든 한두 번씩은 겪게 된다.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다 보면 억울하리만큼 가슴을 치는 일이 생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일들을 단 한 번도 겪지 않고 살았다면 좋은 사람들만 만난 행운아다. 그런 사람들을 만났지만 큰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넘겼는지도 모른다. 다 내 맘 같지 않고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친한 사람에게 갖는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동반하게 된다. 가족 관계도 이런 일들이 발생하게 되면 가족의 연을 끊어내 버리기도 한다. 하물며 남이라면 두 번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일이다. 사람들을 배신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뭐가 잘못된 일인지를 모르기도 한다. 알면서도 상대에 대한 강한 질투나 악감정을 가지고 있어 의도적으로 상대가 곤경에 빠지게 만들려 하는 경우도 있다. 전자인 사람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따져보았자 ‘소귀에 경 읽기’란 말만 떠올리게 될 뿐이다. 상대가 무엇이 문제인지를
앞 뒤가 다른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앞에서는 상대를 아주 잘 이해하고 좋아한다는 듯 언행을 하지만 뒤에 가서는 상반되게 말을 하는 것이다. 말은 한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고 바람을 타고 다니듯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게 되는데 말이다. 모래 속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며 말한 것도 임금님 귀에 들어가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자신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은 당사자도 알게 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간혹 상대가 알게 하려 일부러 말을 흘렸다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들에 대한 나쁜 이야기 거리는 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그 사람의 뒷통수를 치는 격이 되는 것이다. 친한 사이나 상대에게 아주 좋은 척하며 지내는 사이라면 더더욱 뒤에서 앞과 다른 말들을 흘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 뒤돌아서면 꼭 상반되는 말들을 습관처럼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상대는 믿는 사람이라 자신했는데 자신에 대해 나쁜 말들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지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자. 이런 습관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상대를 생각하는 맘이 없거나 상대앞에서 굳이 나쁜 인상이나 분위기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만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