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가면 장면 가옥 인근에 관정빌딩이 있다. 6층으로 이뤄진 이 빌딩 앞에 하나의 동상의 서 있다(사진).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이하 관정재단) 이종환 이사장(101세, 삼영화학 명예회장)의 흉상이다. 이 이사장은 국내에서 '기부왕' 혹은 '기부 천사'로 통한다. 삼영화학과 고려애자 등 평생 일군 기업을 통해 장학재단을 출연하고, 해마다 100억원이 넘는 돈을 장학사업에 지원하고 있어서다. 재단 규모만 해도 1조7000억원으로 아시아 최대다. 그런 이종환 이사장이 지난해 11월 성추문으로 고소를 당하는 등 여러 구설수에 휘말렸다. 성추문 외에도 본지를 통해 횡령과 배임 의혹에 대한 충격적인 제보까지 들어왔다. 사정당국에서도 본지 제보와 비슷한 내용을 세세히 들여다 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에 <KJtimes>에서는 이종환 이사장의 두 얼굴을 추적했다. <편집자 주>
[KJtimes=견재수 기자] 지난 1월 중순, 본지는 이종환 이사장에 대한 제보를 받았다. 앞서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된 성추문 의혹도 포함돼 있다. <본지>는 우선적으로 횡령 및 배임 의혹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 이사장과 관련돼 있거나 과거 관련됐던 관정재단과 기업들을 통해 사실관계를 들여다봤다.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이 이사장 스스로 배임을 했다는 것을 자인한 내용이 담긴 문서를 입수했다. <2022가합507242 소유권이전등기말소 등 청구> 소송과 관련된 것이다.
◆"돈 앞에는 혈육도 없다(?)"
이 소송의 핵심은 이종환 이사장과 그의 손자인 이모씨와의 재산 다툼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대 529.6㎥, 지상 15층 지하 3층, 이하 삼성동 빌딩) 빌딩을 두고 이 이사장은 '명의신탁'을, 손자는 '증여'를 주장했다.
'명의신탁'이란 부동산을 매입하면서 다른 사람 명의로 등기하는 것을 말하는데, 부동산이 많은 재력가들 일부가 세금 회피 목적으로 종종 명의신탁을 하는 경우를 접할 때가 있다. 이러한 목적의 명의신탁은 엄연히 불법이다.
부동산 실소유주인 신탁자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 벌금을, 명의를 빌려준 수탁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본지>가 입수한 소송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 이사장의 손자 이씨는 삼성동 빌딩과 관련해 "원고(이종환)가 이 사건 부동산을 피고(손자)에게 명의신탁했다고 주장하나, 원고와 피고 사이에는 명의신탁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 이사장은 "이 사건 매매계약의 실제 매수자는 원고였음이 분명하고, 이 사건 매매계약은 계약에 따른 법률 효과를 피고가 아닌 원고에게 귀속시키려고 하는 계약이었던 점이 명확하다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 매매계약에 따른 물권변동은 3자 간 명의신탁에 의한 것으로 봐야 마땅하다"고 반박했다.
이 이사장은 그러면서 ▲원고 운영 관정재단 사무실에서 계약이 체결됐다는 점 ▲이 사건 매매계약 체결 당시 피고 나이는 32세에 불과했다는 점 ▲원고가 대출금 변제를 위해 피고 등의 급여를 인상해 줬다는 점 ▲원고가 담보대출 이자를 변제했다는 점 등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법조계와 사정당국 등은 이 이사장이 매매 당시(2015년 11월) 300억원에 달하는 삼성동 빌딩을 빼앗기 위해 여러 근거 등을 제시했지만, 정작 배임을 자기 스스로 인정하는 '덫'에 걸린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가 소송 과정에서 제시한 자금 내역과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배임으로 보기 충분하다는 것이다.
◆몇 년 동안 연봉 수십억원을 추가 입금(?)
<KJtimes>는 취재 과정에서 몇 가지 근거와 자료를 따라갔다. 그 과정에서 당시 이 이사장의 손자인 이씨는 삼성동 빌딩 매매계약 체결 시 총 268억5000원을 연 2.8% 이율로 대출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매달 발생되는 이자는 6265만원이나 됐다.
이 이사장은 이와 관련, 매매계약 체결 후 대출금을 변제하기 위해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회사인 삼영화학㈜과 ㈜크라운에셋, 고려애자공업㈜에 재직 중인 손자와 손부(손자의 아내)의 급여를 대폭 인상해준 이들의 급여 수령 내역을 법원에 제시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 사건 매매계약 이후 회사에 대한 기여 등 특별히 더 늘어난 것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는 급여 인상분만큼을 빌딩 매입 자금 상환에 사용하려는 가공된 급여라는 얘기가 성립되는 대목이다.
실제 손자 이씨는 삼영산업에 재직했던 지난 2014년부터 수억원의 급여를 받았으나, 빌딩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인 2015년 이후 수억원에서 수십억원 인상된 급여를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다른 사람도 아닌 이 이사장 측이 소송과정에서 주장했다.
뿐만 아니다. 이 이사장의 손부(손자 이모씨의 아내)의 경우 크라운에셋과 고려애자공업을 통해 2016년 이후 총 10억원이 넘는 급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이사장의 주장대로라면 삼영화학과 크라운에셋, 고려애자공업 등은 모두 배임행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금융실명제 위반 의혹도 포착됐다. 이 이사장이 손자와 손부의 급여 통장 원본 및 통장 거래를 위한 인감도장을 맡아 가지고 있다가 계좌 거래를 했다는 점도 취재 과정에서 파악됐다.
그러면서 자신이 인상해 준 급여로 인해 손자와 손부 명의의 계좌에는 2016년 이후 매년 수십억원의 급여가 입금됐으며 이들(손자와 손부)의 계좌를 스스로 관리하면서 이를 통해 대출금을 변제했다는 주장을 소송과정에서 재판부에 제시했다.
◆금융실명제법 위반·횡령 의혹도 포착
법조계 한 관계자는 "이종환 이사장이 제시한 자료들이 사실이라면 기부천사로 추앙받던 그의 이면에 충격적을 금할 수 없다"며 "그가 제시한 자료들은 명백한 배임행위에 해당하는 만큼 지금이라도 사정당국에서는 이를 철저히 조사해 할 것"이라고 강변했다.
사정당국 한 관계자도 "이종환 이사장에 대한 의혹들이 제기된 만큼 들여다 볼 여지가 충분한 것 같다"면서 "배임 혐의나 금융실명제법 위반, 횡령 혐의 등이 명백하게 드러나면 법대로 처분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한편 관정재단에서는 이와 관련 '입장은 따로 없다'는 것을 <본지>에 분명히 전달했다.
안성 관정재단 실장은 "이 사건과 관련 사실관계를 알지 못했다"며 "삼영화학으로부터 현재 임금이 더 많이 나갔으니 돌려달라고 청구했다는 말을 보고 받았다"고 말했다.
안 실장은 이어 "이와 관련 입장은 따로 없다"면서 "현재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고 명운에 달려 있기에 이러한 건 가지고 어떤 입장을 내고 그럴 상황이 아닐뿐더러 이 같은 집약적인 문제에 신경 쓸 상황도 아니다"고 덧붙였다.